실라캔스를 찾아서
실라캔스는 원시 척추동물의 먼 조상으로 추정되는 물고기.
3억6천만 년에서 6천5백만 년 사이의 퇴적암 속에서 화석으로
만 그 모습이 발견되었을 뿐, 오래 전에 멸종된 것으로 되어 있
었다. 그런데, 이 화석물고기가 1938년 12월 22일 남아연방 어
느 바닷가에서 어부의 그물에 잡혀 올라왔다. 진화의 대세를 부
정하면서 6천5백만 년을 견뎌온 실러캔스, 그 부정과 저항의 정
신에 이 시를 바친다.
화석연구가들이
6천5백만 년 이전의 퇴적암에서
원시 물고기 화석을 찾았다
짐승의 이빨과 다리 흔적까지 지닌
물고기 화석이었다.
고생물고고학은 이 화석물고기가
3억6천만 년부터
6천5백만 년 전까지 살았던
육지척추동물의 조상 물고기라고 적었다.
해와 달과 바람
눈 시린 파도 가고 오던
지구별에 너무 일찍 와
하염없었던,
진화의 대세를 따라
모든 동물들이 떠나갔는데도
육지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물속을 찾아 간
육지척추동물의 조상
진화를 거부하고
지질 속에 화석만 남긴 채 사라진
숨어버린
진화를 거부한,
짐승의 이빨과 네 다리, 폐肺의 흔적까지 지닌 채
6천5백만 년을 물속에서 숨어 견딘
살아서 그물 속에서 잡혀 올라온 물고기
숨어서 자신을 지킨
부정과 저항,
푸드기는 푸른 정신…
*실라캔스: 육지 척추동물의 조상 물고기
시인의 무덤
시인의 무덤엔
시인의 팔 다리나, 눈 코 귀 입이나
손톱 발톱이나
머리칼 같은 것이
묻히는 것이 아니라
목련꽃이나 영산홍 같았던
전 생애가 묻히는 것이 아니라
예술원 회원이나
문화훈장같은 것이
묻히는 것이 아니라
가령, 김종길 시인이 서른 살 무렵에 쓴
'성탄제'같은 시 한 편이
시인 무덤의 빗돌로 서서
쉼 없는 생명을 불러내주는 것이지
한 생애의 시가
장다리꽃 쪽으로
명주나비를 부르고
후투티같은 새들을 불러
둥지에 알을 품게도 하는 것이지
배추 씨 몇 개를, 후투티 몇 마리를
세상 속으로
불러내고 보여주는 것이지···
이건청 시집 《실라캔스를 찾아서》, 북치는마을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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