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밤의 네 번째 서랍

카르마 법칙/김명서

Beyond 정채원 2021. 7. 17. 15:20

카르마 법칙

 

그래서

하루는 전 생애와 맞닿아 있는 것이다

 

바람을 마주하고 앉아서 면벽을 한다

기억의 한 뿌리는

전생으로부터 도망치려고 법구경 몇 줄 암송을 한다

끝줄 미망에 걸린다

 

미망에 짓눌려

헛되이 무거워진 몸짓

그대로 잠에 잠겨버린다

잠이 깊어지니

비몽(非夢)과 비몽(悲夢)사이

예언의 힘이 빙의되는지

오리온자리를 에둘러 흐르는

강 건너

 

미궁에 갇혀 연자매를 힘겹게 끌고 있는 천형,

불생불멸의 고리를 끊겠다며

죄를 면죄 받는 소도를 향해 천 마리 종이학을 날려 보낸다

깃털들 하늘하늘 날고

 

한가득 울리는 북소리

긴 장대에 앉은 나비도 몽환으로 빠져든다

몽환 아래쪽

아직 태어나지 않은 업들이 한 줄로 서 있다

옆으로 한 발짝 비켜서

막막히 방울 소리 울려 퍼지고

고달픈 이야깃거리들이 울긋불긋 깃발을 흔든다

 

 

 

「김명서 시인 추모특집」, 《시와편견》2021 여름호

'밤의 네 번째 서랍'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붉은 사막 로케이션/오정국  (0) 2021.07.24
무성영화처럼/한창옥  (0) 2021.07.23
개가 죽은 자리는 어디인가/강인한  (0) 2021.07.15
23 아이덴티티*/이우디  (0) 2021.07.13
코로나 시대/심종록  (0) 2021.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