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밤의 네 번째 서랍

붉은 사막 로케이션/오정국

Beyond 정채원 2021. 7. 24. 19:01

붉은 사막 로케이션

 

어디서 시작됐는지 종잡을 수 없다

붉은 사막 로케이션

단어들의 윤곽이 선명하다

평면의 그림에서 입체적 형상이 일어서듯

선인장처럼 타오르는 빛의 하늘

모로코 남쪽 붉은 사막 로케이션

거기서 눈먼 자는 되돌아올 수 없다

제 눈을 찌른 오이디푸스가

철 가면을 흔들며 울부짖는 곳*

그 어디쯤 모래 무덤에

내 전생(前生)의 발자국을 맡겨 둔 것 같다

 

검은 가죽 바지 오토바이가

일몰의 지평선을 넘어가고

밤의 야영지는 끝없다

양고기 굽는 모닥불의 그림자들

빛으로 어둠으로 얼룩진

얼굴들, 구릉 너머 모래밭에 잠겨 있는데

발을 들이밀 자리가 없다

 

텔레비전 화면의 긴급 뉴스 자막처럼

내 머릿속을 지나가는

모로코 남쪽 붉은 사막 로케이션

이 문장이 거쳐 온 경로를 밝힐 수 없다

 

 

*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감독의 영화 「오이디푸스 왕」

 

 

오정국 시집 《재의 얼굴로 지나가다》, 민음의 시 2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