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일
— 호모 큐피엔스Homo cupiens
꼬리별처럼 나, 도주 중이다 타면서 삭으면서
날아라 불의 돌
어제의 신기루 잊고 시간 바깥을 날거라
오늘이야 우리가 빚은 가상의 생육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한낱 형상의 잠재태다만
나는 백만 볼트, 불을 매단 자
해일아⸺ 그대는 물방울의 거대 집적,
네 너울 파도를 목도한 적 있더냐
영생할 거 같더냐
청동 물의 벽, 벌떡 일어서 광포한 허리케인으로 태풍, 사이클론으로 그대 심사 사나운 낙서처럼 뿌리 뽑힌 목숨들 식겁 주더라만
‘엔트로포즈’* 멈추라 하는 거니
멈춤 없이 내달리고 있는 호모 사피엔스, 나를 어쩐다니
사람의 마을 깊숙이
포진한 바이러스 해일아⸺ 침묵으로 무장한 너희,
골리앗을 꾸짖는 것이냐
나, 무한과 유한 사이에서
사랑과 노래의 환희, 오래 지나쳐서야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은데
함께 먹는 밥이나
잠자는 일상조차 다 사무침이란 걸
믿음도 사유도 ‘나’에서 끝나는 세상이란
초록이어도 초록이 아닌
황금의 허구렁,
기척 없이 진앙지를 떠나
소돔의 거리에 잠입한 해일아⸺
숱한 사람이 제 이름을 지우고 떠나는 걸
뉘 모를까만
나는 ‘그대의 멈춤’만을 청하는구나
누가 나를 위해 철야기도 중인 것이냐 광년 밖에서 오는 방언을 내가 듣고 있다
“꼬리별처럼 너, 도망 중인 자
사선으로 날아가는 불의 돌
멈추거라
상자 바깥을 보거라 호모 사피엔스, 생각하는 자여“
* 강이연(미디어 아티스트)의 설치미술 제목.
김추인 시집 《해일》,한국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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