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검 空劒*
눈, 그것은 총체, 그것은 부품
알 수 없는 무엇이다
지운 것을 듣고, 느낌도 없는 것을 볼뿐더러
능선과 능선 그 너머의 너머로까지 넘어간다
눈, 그것은 태양과 비의 저장고
네거리를 구획하고 기획하며 잠들지 않는
그 눈, 을 빼앗는 자는 모든 걸 빼앗는 자다, 하지만
그 눈, 은 마지막까지 뺏을 수 없는, 눕힐 수 없는
칼이며 칼집이며 내일을 간직한 자의 새벽이다
양날이지만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수천수만, 아니 그
이상의 팔이라 할까
(나부끼지 않지만 죽지 않았습니다. 바람ㅡ그냥 보냅
니다. 대충 압니다. 나누지 않은 말 괜찮습니다. 여태
잎으로 수용하고 뿌리로 살았거든요. 대지의 삶은 적
나라한 게임입니다. 간혹 구름이 움찔하는 건 어느 공
검에게 허를 찔렸기 때문, ···일까요?)
공검은 피를 묻히지 않는다
다만 구름 속 허구를 솎는
그를 일러 오늘 바람은 시인이라 한다
공검은 육체 같은 건 가격하지 않는다
*공검: 허虛를 찌르는 칼(필자의 신조어)
죽은 생선의 눈
죽고 싶다. 죽어야겠다. (차라리)
그런 마음. 꺼내면 안 돼. 왜냐고?
저 머나먼
경계 밖에서
그랬잖아
살고 싶다. 살아야겠다. (진정으로)
그런 바람 포개다가 여기 왔잖아
엄마ㅡwormhole을 통해 왔잖아
갖고 싶었던 그 삶
지금이잖아. 여기가 거기잖아
죽어본 적 없으면서 겁 없이 '죽음 희망' 그런 거
품지 말자꾸나. 우리! 경험으로 죽는 건 괜잖지만
경험일 수 없는 죽음 속에서
오늘 이 순간 아주 잊은 채
다시 태어나고 싶을 거잖아? 이게 몇 번째 생일까 생
각해봤니? 만약 말이야. 그 비밀이 열린다면, 우린 또
얼마나 큰 후회와 자책/가책에 시달릴까 생각해봤니?
접시에 누운 생선이 나를 바라보면서···
종을 초월한 자의 언어로 그런 말을 하더군
그로부터 난 생선의 눈을 먹지 않게 되었지
퀴리온도
ㅡ미망인
아직 죽음과 떨어져 있는 사람들은 죽음을 이리저리
배치하네. 죽음에 관한 미로도 가꾸어내네. 겹겹으로
죽음에 포위된 자는 죽음은커녕 삶에 대해서조차 한마
디 못하고 마네. 이런 게 바로 말할 수 없는 것인가, 침
묵해야 되는 것인가, 아니 그게 아니라 침묵이 급습ㅡ
덮쳐버리는 게 아닌가, 아무 색도 아닌 시간이 떠내려
가네.
꽃 잃고 잎 지우는 바위
눈뜨고 말 묻고
외로 나앉아버리는 바위
아직 죽음과 떨어져 있을 땐 그도 죽음 세포를 사변
적 논리적 미학적으로 성찰했었네. 그런데 불과 일 년
사이 피붙이 셋씩이나 뜨고 보면 열쇠 꾸러미 뚝 떨어
진대도 무슨 언어를 꺼낼 수 있으리오. 이렇게까지 사
라지는 건가, 기호네 파토스네 전위네 신경을 자극하
던 그 모든 선들이 저렇게까지 사건지평선에 나포되어
버리다니.
정숙자 시집 《공검 & 굴원》, 지성의상상 026, 미네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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