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책소식

공검 & 굴원/정숙자 시집

Beyond 정채원 2022. 5. 17. 23:42

 

  공검 空劒*

 

 

   눈, 그것은 총체, 그것은 부품

   알 수 없는 무엇이다

 

   지운 것을 듣고, 느낌도 없는 것을 볼뿐더러

   능선과 능선 그 너머의 너머로까지 넘어간다

 

   눈, 그것은 태양과 비의 저장고

   네거리를 구획하고 기획하며 잠들지 않는

 

   그 눈, 을 빼앗는 자는 모든 걸 빼앗는 자다, 하지만

   그 눈, 은 마지막까지 뺏을 수 없는, 눕힐 수 없는

   칼이며 칼집이며 내일을 간직한 자의 새벽이다

 

   양날이지만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수천수만, 아니 그

이상의 팔이라 할까

 

   (나부끼지 않지만 죽지 않았습니다. 바람ㅡ그냥 보냅

니다.  대충 압니다. 나누지 않은 말  괜찮습니다.  여태

잎으로  수용하고 뿌리로  살았거든요. 대지의  삶은 적

나라한 게임입니다. 간혹 구름이  움찔하는 건  어느 공

검에게 허를 찔렸기 때문, ···일까요?) 

 

   공검은 피를 묻히지 않는다

   다만 구름 속 허구를 솎는

 

   그를 일러 오늘 바람은 시인이라 한다

   공검은 육체 같은 건 가격하지 않는다

 

 

  *공검: 허虛를 찌르는 칼(필자의 신조어)

 

 

 

   죽은 생선의 눈

 

   죽고 싶다. 죽어야겠다. (차라리)

 

   그런 마음. 꺼내면 안 돼. 왜냐고?

 

   저 머나먼

   경계 밖에서

   그랬잖아

 

   살고 싶다. 살아야겠다. (진정으로)

 

   그런 바람 포개다가 여기 왔잖아

   엄마ㅡwormhole을 통해 왔잖아

   갖고 싶었던 그 삶

   지금이잖아. 여기가 거기잖아

 

   죽어본 적 없으면서 겁 없이 '죽음 희망' 그런 거

   품지 말자꾸나. 우리! 경험으로 죽는 건 괜잖지만

 

   경험일 수 없는 죽음 속에서

   오늘 이 순간 아주 잊은 채

 

   다시 태어나고 싶을 거잖아? 이게 몇 번째 생일까 생

각해봤니? 만약 말이야. 그 비밀이 열린다면,  우린  또

얼마나 큰 후회와 자책/가책에  시달릴까 생각해봤니?

 

   접시에 누운 생선이 나를 바라보면서···

 

   종을 초월한 자의 언어로 그런 말을 하더군

   그로부터 난 생선의 눈을 먹지 않게 되었지

 

 

  퀴리온도

   ㅡ미망인

 

 

   아직 죽음과 떨어져 있는 사람들은 죽음을 이리저리

배치하네. 죽음에  관한 미로도 가꾸어내네.  겹겹으로

죽음에 포위된 자는 죽음은커녕 삶에 대해서조차 한마

디 못하고 마네. 이런 게 바로 말할 수 없는 것인가, 침

묵해야 되는 것인가, 아니 그게 아니라 침묵이  급습ㅡ

덮쳐버리는 게 아닌가, 아무 색도  아닌 시간이 떠내려

가네.

 

   꽃 잃고 잎 지우는 바위

   눈뜨고 말 묻고

   외로 나앉아버리는 바위

 

   아직 죽음과 떨어져 있을  땐 그도 죽음 세포를 사변

적 논리적 미학적으로 성찰했었네. 그런데  불과 일 년

사이 피붙이 셋씩이나 뜨고 보면  열쇠 꾸러미 뚝 떨어

진대도 무슨 언어를 꺼낼 수 있으리오.  이렇게까지 사

라지는 건가, 기호네 파토스네 전위네  신경을  자극하

던 그 모든 선들이 저렇게까지 사건지평선에 나포되어

버리다니.

 

 

정숙자 시집 《공검 & 굴원》, 지성의상상 026, 미네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