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층
홍일표
9층이 9층 밖으로 범람한다
9층은 9층 밖을 넘보다가 자기 얼굴을 놓치고 만다 목소리도 잊고 먹통
이 되거나 돌아가는 길을 잊기도 한다
그림자는 바닥을 안고 고민한다
고민이 깊어지면 누군가는 그림자를 사다가 거실에 걸어놓고 말을 걸
기도 한다
자세히 보면 까마귀 여러 마리가 앉아 있다
9층에서 빠져나간 검은 빛들은 심장에서 멀어진 피 같다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가 동쪽을 끌고 간다 정치인처럼 동쪽은 무정란
이어서 싼값에 거래되거나 외상으로 팔리기도 한다
9층은 기억한다
제 몸 안에 구겨넣지 못한 몸의 쓸쓸함을
어느 날 9층의 심장이 뛴다 쿵쿵거리며 말달리는 아이들이 9층을 완성
한다 햇볕의 내부가 뜨거워진다 발갛게 달구어진 햇살들이 철학자처럼
그림자를 태워 9층이 밝아진다 직립한 인도풍의 단풍나무 같다
몸 밖에 널브러진 그림자가 식어가고
사람들이 위조지폐 같은 고무풍선을 나누어준다 색이 바래거나 터지기
전까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는
9층이 내려다본다
가설무대처럼 머잖아 사라질
9층이 없는 9층
《상징학 연구소》 2022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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