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비약
심혈관 속에서
나비가 날아다닌다
손목이 펄럭펄럭한다
생명보험 증서가 아무리 뒤져도 나타나지 않는데
압화로 눌러놓은 시편들이 어느 날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는데
예상보다 너무 일찍 와버린 이별이 있고
맘 단단히 먹고 대비해도 좀체로 달려들지 않는 눈사람 괴한이
골목 끝에 우두커니 서 있다
눈물이 몇 줄기 녹아흐른 채로
넘기다 목에 걸려버린 혈압강하제와 오메가3처럼
늘 끼고 다니는 것들
안 먹으면 불안하고
복용해도 복용해도 중단이 없는
기억들, 슬픔들, 회한들
단번에 종량제 봉투에 넣어버릴까
만지작거리다
결심한 듯
불경과 성경이 있는 서랍 깊숙이 넣어버린다
알록달록 어제와 오늘이 오색으로 충돌하는 구절양장 헤매며
불안이 날개치지 않는 날은
더욱 불안하다
《문학사상》 600호 기념 특대호(2022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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