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모텔 사이
교회와 모텔 사이
오래되고 작은 그의 집이 있다.
더럽고 구겨지고 찢어진 것만 먹고 살아온
그의 집에
밤업소 아가씨들 속옷
인부들의 땀에 배인 작업복
신사들의 신사복
고백성사라도 마친 사람들처럼
가지런히 옷걸이에 걸려 있다.
밤이 깊고 어둠이 깊다.
기도를 드리던 교인들 오래 전에 돌아가고
아가씨들 히히덕거리던 소리
주정꾼들 혀 꼬부라진 소란마저 지나간
오줌 냄새 질퍽한 골목길
가로등만 적요하다.
거기 교회와 모텔 사이에서
늦게까지 다리미질하는
피곤한 그의 어깨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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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서 눈길이 가는 곳은 "피곤한 그의 어깨 눈부시다."이다. 깨끗하게 세탁한 옷들을 손에 쥔 다리미로 누르며 주름을 펴는 그 어깨를 아마도 백열전등이 비추고 있을 것이기 때문인데, 그러나 곧게 펴서 수직을 이루고 있는 다리미질하는 사람의 어깨가 눈부신 것은 전등이 비추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밤늦은 신성한 노동의 모습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세탁소에는 신분을 따지지 않고 더럽고 구겨졌던 것들이 세탁소 주인에 의해 마치 세례를 하듯 깨끗하게 빨아 옷걸이에 걸어 놓은 것이 마치 "고백성사라도 마친 사람들" 같은 것이다. (···)
살펴보았듯이 염결성을 추구하는 강경호 시인의 작품들은 시를 예술 차원으로만 이해하지 않고, 실천적 덕목으로 인식하는 것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다.
강나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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