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안은 집에서 세한도를 보네
ㅡ추사 김정희
서귀인의 귀와 밀방아도 힘을 잃고
대정의 소나무가 불그스레 변해 갈 즈음
반딧불 호롱불 삼아
오름이 달래고 바당과 말하는 위리안치
눈에 어려진다
당신이 차린 밥상, 칭얼대는 새끼들
거친 붓 하나
물속의 마음도 추위를 벗하면 그릴 수 있겠다
먹물이 시리다 백지 위를 숨 쉬게 하라
바닷가 집 발치에서 활쏘기 하는 새
제주의 울음으로 휘갈길 때만
어쩌면 섬 속의 섬, 혹한을 즐길 수 있으랴
매어 둔 배들과 함께 묶여 있으니
고인 시간 속에 칼바람이 그려지네,
내 안의 내방객이 검은 바위가 될 즈음
한라여, 바다로 사르고만 있으련가
까마귀 우는 저녁, 제주목의 군졸들이 당도하겠다
나막신 신고 도롱이 차림, 마음을 정해야겠다
바람을 안은 귤중옥, 감귤 창고 앞에서
아비 소나무를 세 그루의 잣나무가 부른다.
애제자 이상적이 연경에서 사 온
책들과 문방사우 객주 편으로 잘 받았다
그대는 나에겐 문방 오우,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네"
우는 새랑 재우고 웃는 새랑
쉰다리* 밥이라도 먹어야 겠다
이 밤을 돛대와 삿대로 저어 갈 즈음
"작은 창가에 빛이 밝으니
나를 오랫동안 앉아 있게 한다"**
한경용 시집 《귤림의 꽃들은 누굴 위해 피었나》, 시작시인선 0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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