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도 걷는 사람
당신의 왼손은 나의 오른손이다 우리는 손을 잡고 반대쪽
으로 걷는다 가끔은 당신을 잃어버리기도 하는데, 들판을 가
로지르는 나무들 하얗게 손사래 친다 생각난 듯, 이름을 부르
면 모르는 얼굴이 뒤돌아본다
당신은 어깨를 찢어서 부글거리는 흰피, 휘파람을 불면 꽃
들은 만발한다 가을 개 짖는 소리는 달의 뒷면에서 들려오고
눈을 뜨지 못한 강아지는 꿈 밖으로 나가서야 젖꼭지를 물
수 있는데
담장밖에 둘러쳐진 오죽의 둘레는 그림자가 없다 대나무
숲으로 돌아가야 이름이 돌아오는데, 당신은 멀어도 걷는 사
람 도무지 말을 모르겠는 여기, 눈빛으로 기록된 말들 속에서
없는 당신은 다정하다
시집 《멀어도 걷는 사람》 리토피아포에지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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