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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어도 걷는 사람/손현숙 시집

Beyond 정채원 2024. 1. 27. 22:44

 

 

 

   멀어도 걷는 사람

 

 

   당신의 왼손은  나의  오른손이다 우리는 손을  잡고 반대쪽

으로 걷는다 가끔은 당신을 잃어버리기도 하는데,  들판을 가

로지르는 나무들 하얗게 손사래 친다 생각난 듯, 이름을 부르

면 모르는 얼굴이 뒤돌아본다

 

   당신은 어깨를 찢어서 부글거리는  흰피, 휘파람을 불면 꽃

들은 만발한다 가을 개 짖는 소리는 달의  뒷면에서 들려오고

눈을 뜨지 못한 강아지는 꿈  밖으로  나가서야  젖꼭지를  물

수 있는데

 

   담장밖에 둘러쳐진 오죽의  둘레는 그림자가  없다  대나무

숲으로 돌아가야 이름이 돌아오는데, 당신은 멀어도  걷는 사

람 도무지 말을 모르겠는 여기, 눈빛으로 기록된 말들 속에서

없는 당신은 다정하다

 

 

 

시집 《멀어도 걷는 사람》 리토피아포에지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