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와 비
김 륭
우는 사랑을 잘 먹이고 잘 입히는 마음을 쓰려다가
죽었다고 말하면 거기, 당신은 웃겠지요.
따라 웃는 사람도 많겠지요. 참 다행한 일이예요.
여기가 아니라 거기여서
당신이 웃으면 쥐도 웃을 것 같아서
나는 조마조마
또 비에게 가요. 비는 기다리는 일이 아니어서
올 때 울었으니 갈 때도 울어야지 싶은
그런 마음일 거예요.
사람이 사람을 가만히 돌멩이처럼 울어주는 일, 그것은
단 하루 동안 만이라도 우려먹고 싶은
일이어서
나는 가끔씩 돼지를 돌보는 바람 같다.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때마다 잡히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런 내가 불길해질 때가 있어서
들켜서는 안 되는 잠, 요즘 들어 자주 비가 새지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그저 물끄러미
구경만 한다.
돼지도 돼지만큼 비를 올려다볼 수 있고 우산을 들고
하늘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돼지를 빼면 가죽만 남을 것 같은
밤, 당신과 내가 웃으면 쥐도 웃을 것 같아서
나는 몸 밖으로 나온 나의 돼지를 오래된 연인처럼
쓰다듬기 시작한다.
계간 《시와 사상》 2024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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