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밤의 네 번째 서랍

폭설/정혜영

Beyond 정채원 2024. 6. 7. 18:31

 

폭설

 

정혜영

 

 

1

 

검은 발자국은 앞에서 걸어가는 모르는 사람의 것

 

이 순간이 계속되어 온 것 같다

 

발자국 발자국

 

앞에 가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사람

고개를 들 수 없고

 

멈출 수 없고

말 없는 발걸음

 

누구일까, 궁금하지 않고 궁금하고

 

나는 어느 영상 속으로 들어와

움직이는 한 장면의 발자국

 

 

 2

 

줌 인

줌 아웃

 

사라졌다 나타나는 누군가의 뒤꿈치

나는 어떤 그림자를 따라가고 있다

 

오목 렌즈 안에 갇힌 것 같다

눈송이가 스크린 안으로 들어온다

 

  한

            송

      이 

 

               송 

 

      이

 

 

3

 

없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순간이 있다

 

곁에서 누군가

말없이 팔짱을 풀고 걸어간다

 

검은 눈 위에

하나씩 흰 그림자

 

검은 발자국

 

지우면서

한꺼번에 쏟아지는

 

백지의 눈에 갇힌 것 같다

 

 

《POSITION》 2024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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