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
정혜영
1
검은 발자국은 앞에서 걸어가는 모르는 사람의 것
이 순간이 계속되어 온 것 같다
발자국 발자국
앞에 가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사람
고개를 들 수 없고
멈출 수 없고
말 없는 발걸음
누구일까, 궁금하지 않고 궁금하고
나는 어느 영상 속으로 들어와
움직이는 한 장면의 발자국
2
줌 인
줌 아웃
사라졌다 나타나는 누군가의 뒤꿈치
나는 어떤 그림자를 따라가고 있다
오목 렌즈 안에 갇힌 것 같다
눈송이가 스크린 안으로 들어온다
한
송
이
한
송
이
3
없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순간이 있다
곁에서 누군가
말없이 팔짱을 풀고 걸어간다
검은 눈 위에
하나씩 흰 그림자
검은 발자국
지우면서
한꺼번에 쏟아지는
백지의 눈에 갇힌 것 같다
《POSITION》 2024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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