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마음에 대하여
물속에 오동나무를 심는 마음이 있다 연꽃도 그런 마음 모
란도 그런 마음 오리 두 마리도 그런 마음이어서
가만히 헤엄을 치게 하였다 그런 마음을 싣고 돛단배가 온
다
마음에 무엇을 들이는 마음 그런 마음이 더욱 따뜻하여 소
나무가 자란다 바위 속을 지나 지붕 끝을 지나간다 머리가 붉
은 해에 닿고서야 편안해진다
지붕에는 매화꽃이 피었다 잘 모르는 마음인데 잘 알 것 같
은 마음이다 마치 씨앗이 백 개나 된다는 유자가 막 벌어진 것
같은데 어떤 논리 없이도 알 것 같다 이를테면 지금 여기는 너
무 멀고 멀리 거기는 지금 내 앞에 와서 머무는 것 그런 것처럼
없는 이가 자꾸 나를 보러 오는 것이니
물속에
연꽃은 연꽃이 아니고 모란은 모란이 아니고 복숭아는 복숭
아가 아니어서
내가 여기에 있는 것
그리고
거기서부터 걸어와야 하는 것
그리고 나를 지나가야 하는 것
높은 누대
푸른 기와
오색 꽃구름을 밟으며 오시라고
붉은 문을 열어두었다
슬픔을 마음껏 열어두고
폐허가 한없이 늘어나 반짝였으므로
작약이 피었다
이승희 시집 《작약은 물속에서 더 환한데》, 문학동네시인선 217
'책소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술의 둠스데이/문정영 시집 (2) | 2024.08.30 |
---|---|
한밤의 이마에 얹히는 손/전동균 시집 (0) | 2024.08.12 |
<물질은 비물질을 껴안고 운다>, 정채원-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유시민 (1) | 2024.07.31 |
새까만 울음을 문지르면 밝은이가 될까/김밝은 시집 (0) | 2024.07.31 |
초원의 별/박우담 시집 (0) | 2024.06.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