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엔 얇아진다 박연준 침대에 앉아 바지를 벗고 양말을 벗으며 나를 찾는다 부풀거나 야윈, 나라는 조각들 발치에 개켜두고 찾는 것은 나, 찾는 사람도 나 책상 위에 접혀 있는 것 변기 속으로 빨려 들어간 것 고양이가 핥아먹은 것 모두 다 나 무너지는 산을 등으로 막아야 하는 것도 나, .....................................................................................................................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 「혼자는 외로운 순간에도 바쁘다」, 「저녁엔 얇아진다」라는 독백은 시집의 제목이고 이 시가 있는 챕터의 소제목이면서 시의 제목이다. 이 아름다운 정념의 삼중주는 사랑과 외로움은 저녁이기에 그 색조가 미묘하다는 것을 환기시켜 준다. 동시에 금방 휘발되어버릴 언어는 허망하지만 의미는 오래 남는다는 것을 속삭여준다. 모든 사물과 물상은 외로움을 가지고 있다는 일상의 고독 속에 잠기면, 시인에게 세계는 나와 고독의 마주침이다. 더 외로운 것은, 침대에 앉아 바지를 벗고 양말을 벗으며 한없이 침잠할 때, 침대며 바지며 양말은 나라는 것. 마찬가지로 세계는 내가 변한 것이라는 고독의 시선과 오래 마주친다. 송재학 (시인) |
'비평·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장의 「켈로이드」 감상 / 송재학 (0) | 2024.11.05 |
---|---|
김연덕의 「느린 상처」 감상 / 박소란 (1) | 2024.10.18 |
물질은 비물질을 껴안고 운다/정채원 (1) | 2024.08.30 |
김륭, 「서로 등 돌리고 앉아서 누군가는 빵을 굽고 누군가는 빵을 먹고」 평설 / 박남희 (0) | 2024.07.18 |
[자작시 해설] 나는 나의 장례식에 갔었다/조정인 (0) | 2024.07.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