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은 비물질을 껴안고 운다/정채원
두개골 속 1.5킬로 고깃덩어리가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도대체 사랑이란 게 있긴 있는가
이런저런 것들을 캐묻는다
자다가도 묻고 울다가도 묻고,
이 세상에 보이는 건 모두 가짜 아닐까
이 얼음 같은 사탕도 착각 아닐까
물질이 자유의지를 갖고 물질을 와드득 깨물고
물질과 비물질이 서로 밀고 당기고 엎치락뒤치락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 또한 누구의 희미한 기억 속일까
무중력의 공간을 달려가는 그리움은
백만 미터고 천만 미터고 거침없이 계속 달려간다
잡을 수가 없다, 그대여 슬픔이여
내 육신은 고작 백 미터도 도망치지 못하는데
생각의 꼬리에 매달려 캄캄한 우주를 홀로 유영하는
나는 누구의 꿈속에서
그림자의 그림자를 보고 있는 것일까
에포케!
다시 동굴로 들어가자
뇌가 평생 갇혀 사는 그곳으로,
살아서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그곳에서
낡은 세포는 다 갈아치운 새 물질로
내일은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가 될지도 모른다
* 놀라워라. 길지않은 시 한 편에 생물학, 화학, 우주과학, 신학, 뇌과학, 심리학, 철학 등이 꿰맨 자국도 없이 서정시의 맥락으로 한 줄에 꿰어지는구나. 이렇게 더운 여름을 보내면서도 시인들은 자신만의 물질과 비물질을 엎치락뒤치락거리며,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끝나지 않은 싸움을 계속했을 것이다. 동굴 속 하안거가 끝난 뒤 어떻게 우화된 나비의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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