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비평·에세이

물질은 비물질을 껴안고 운다/정채원

Beyond 정채원 2024. 8. 30. 23:59

물질은 비물질을 껴안고 운다/정채원

 

 

 

두개골 속 1.5킬로 고깃덩어리가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도대체 사랑이란 게 있긴 있는가

이런저런 것들을 캐묻는다

자다가도 묻고 울다가도 묻고,

이 세상에 보이는 건 모두 가짜 아닐까

이 얼음 같은 사탕도 착각 아닐까

물질이 자유의지를 갖고 물질을 와드득 깨물고

물질과 비물질이 서로 밀고 당기고 엎치락뒤치락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 또한 누구의 희미한 기억 속일까

무중력의 공간을 달려가는 그리움은

백만 미터고 천만 미터고 거침없이 계속 달려간다

잡을 수가 없다, 그대여 슬픔이여

내 육신은 고작 백 미터도 도망치지 못하는데

생각의 꼬리에 매달려 캄캄한 우주를 홀로 유영하는

나는 누구의 꿈속에서

그림자의 그림자를 보고 있는 것일까

에포케!

다시 동굴로 들어가자

뇌가 평생 갇혀 사는 그곳으로,

살아서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그곳에서

낡은 세포는 다 갈아치운 새 물질로

내일은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가 될지도 모른다

* 놀라워라. 길지않은 시 한 편에 생물학, 화학, 우주과학, 신학, 뇌과학, 심리학, 철학 등이 꿰맨 자국도 없이 서정시의 맥락으로 한 줄에 꿰어지는구나. 이렇게 더운 여름을 보내면서도 시인들은 자신만의 물질과 비물질을 엎치락뒤치락거리며,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끝나지 않은 싸움을 계속했을 것이다. 동굴 속 하안거가 끝난 뒤 어떻게 우화된 나비의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