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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시

제 1회 세계디카시인상

Beyond 정채원 2024. 10. 29. 08:09

 

 

 

 

 

<2024년 제1회 세계디카시인상 심사평-오형엽>

 

 

풍경과 내면의 충돌, 불꽃의 강도와 밀도

 

오형엽

 

 

심사위원들은 최근 출간된 디카시집들 중에서 본심 대상작을 선별하고 개별적으로 검토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심사일에 만나서 각자 추천한 디카시집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였고 그 과정에서 정채원 시인의 디카시집 열대야를 최종 수상작으로 선정하는 데 합의했다. 정채원 시인의 열대야는 디카시의 일반성 및 공통성을 범례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디카시의 특수성 및 고유성을 개성적으로 잘 보여주는 시집이라는 점에서 제1회 디카시문학상의 수상작이 되기에 손색이 없었다.

 

디카시적인 것사진의 가시적 장면시인의 비가시적 내면이 순간적으로 접속하거나 충돌하면서 일으키는 불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인 디카시에서 사진의 가시적 장면은 자연의 풍경, 생활의 풍경, 인물의 풍경, 인간관계의 풍경 등이 대종을 이루고, ‘시인의 비가시적 내면은 일상의 경험이나 직관, 의식의 사고나 감정 등이 대종을 이룬다. 이 두 영역이 순간적으로 접속하거나 충돌하면서 불꽃을 일으키는 디카시의 속성을 정채원 시인의 열대야도 범례적으로 잘 보여준다. 한편 정채원 시인의 열대야사진의 가시적 장면시인의 비가시적 내면이 순간적으로 접속하거나 충돌하면서 일으키는 불꽃의 강도와 밀도를 높여서 디카시의 정수라고 부를 만한 특수한 수준에 도달한다.

 

예를 들면 시집에 수록된 작품 시인(Poets)어두운 구렁 위에 나무가 뿌리를 내리는 장면사진으로 제시하고 제 안에/끝 모를 만장굴을 키우는 자들//동굴 밖으로 나가려고 동굴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며/손톱으로 긁은 벽화가 발견되기도 한다/불긋한 핏자국 같기도 한 그것이라고 로 표현한다. 사진과 시 사이에는 나무-시인’, ‘어두운 구렁-자기 안의 동굴’, ‘뿌리-손톱으로 긁은 벽화(불긋한 핏자국)’ 등의 유비적 해석이 개입된다. 정채원 시인의 디카시는 이 유비적 해석을 통념적이고 상식적인 의식의 사고나 감정으로 시도하지 않고 시창작의 내면 체험을 경유해서 무의식의 감응(affect)이나 충동(impulsion)으로 시도한다. 그리고 이 무의식의 감응이나 충동을 그 자체로 표현하지 않고 손톱으로 긁은 벽화”, “불긋한 핏자국등과 같은 상징적이고 암시적인 이미지로 표현함으로써 비로소 시적 강도 및 밀도를 얻는다(‘에서 손톱으로 긁은 벽화”, “불긋한 핏자국등이 풍크튬에 해당한다면, ‘사진에서 구렁의 어둠’, ‘나무가지 사이에 반짝이는 햇빛등이 풍크튬에 해당한다).

 

정채원 시인의 디카시에서 디카시적인 것사진의 풍경시인의 내면간의 접속이나 충돌을 통해 발생하는 불꽃이고, 그 내적 메커니즘은 유비’-‘무의식의 감응이나 충동’-‘상징적이고 암시적인 이미지’-‘몽타주라고 요약할 수 있다. 정채원 시인의 제1회 세계디카시인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오형엽)

 

 

 

<수상 소감>

 

열정을 잃지 않고, 실패를 두려워 않고

 

정채원

 

 

올해는 디카시 발원 2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입니다. 창신대 교수이신 이상옥 시인이 창시한 후 그동안 K-리터러쳐로서 디카시는 국내 곳곳으로 확산되는 것을 넘어 이미 세계 곳곳으로 전파되고 있습니다.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한국문학은 세계문학의 수용자의 입장에서 전파자로 그 위상을 역전시키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저는 디카시에 대한 공부도 짧은 사람입니다. 10여 년 전부터 사진이 좋아 동호인들과 국내로 국외로 사진을 찍으러 다니면서 어릴 적 꿈인 화가가 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도 하였습니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장시간 모니터 앞에서 사진을 선별하고 정리하다가 허리병을 얻기도 하였습니다. 30여 년 시를 써왔기에, 영감을 불러일으키는영상 기호에는 즉시 짧은 문자 기호를 붙여놓곤 했습니다. 최근 외장하드의 고장으로 자료를 많이 잃고 나서 서둘러 디카시집을 묶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제 첫 디카시집에 대한 많은 격려와 과분한 칭찬의 말씀들로 이번 여름은 제게 그야말로 열대야 중 가장 뜨거운 열대야였습니다.

 

디카시에 대한 열기로 후끈후끈한 요즘, 이런 뜻 깊은 <세계디카시인상>을 제가 1회로 수상하는 영광을 안게 되어 감사한 마음과 함께 송구함을 느낍니다. 오래전부터 디카시에 열정적으로 매진해 오신 많은 훌륭한 디카시인 선배님들의 길을 따라가며 저는 앞으로 배울 것이 많을 것입니다. K-컬처로서 디카시의 세계화를 위해 제 힘이 닿는 데까지 남은 열정을 바치도록 따뜻한 가슴으로 지켜봐 주십시오. 디카시의 발전을 위해 불철주야 애쓰시는 김종회 회장님과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지금 이 순간도 결정적 영상의 순간 포착과 짧지만 강렬하고 깊이 있는 문자 기호를 길어 올리기 위해 긴장을 놓지 않으시는 디카시인 여러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