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블로그처럼 '맑고 따뜻하게' 우리들 가슴 속에 살아 있다.
어느 아름다운 날
정숙자
딱 하루만 더 살아라. 그 하루에 뭘 하겠느냐 물으시오면 부모님 산소에 가겠습니다- 하겠습니다. 늙은 모습 이대로, 쓸쓸하기 그지없는 마음 이대로 고속버스/덜컹버스를 타고 어릴 적 나폴나폴 오가던 길. 그 구름 그 바람 그 무덤 앞에 깊이깊이 절하겠습니다. 어머니- 불러보겠습니다.
다시 서울로 돌아오지는 말고 그 무덤가에서 눈감아도 좋겠습니다. '가자, 하루가 다 되었다.' 기척을 넣으시면 저는 그저 '예' 하겠습니다. 자식들을 굳게 믿고 다독이고 사랑하신 분. 어머니는 유독 저를 가엾게 여긴 분이었습니다. 저 역시 어머니를 참으로 가엾게 고맙게 여겼습지요.
부모자식간이 아니면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쏟아부어도- 쏟아부어도- 부모자식간이 아니라면 그 사랑은 그만큼 빛나지 않을 겁니다. 제가 어머니를 잊을 때조차 어머니는 저를 위해 기도하셨는걸요. "어머니, 누구를 제일 보고 싶으세요?" 임종을 앞둔 어머님께 여쭈었더니,
"어머니…" 라고 가까스로 말씀하셨습니다. 여든셋의 어머니께서 뜻밖에도, 정말이지 뜻밖에도 멀리 떨어져 사는 자식이 아니라 당신의 어머니를 보고 싶어 하셨던 겁니다.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사람은 결국 내가 사랑한 사람이 아니라 나를 사랑한 사람을 그리워하게 된다.'는 것을요.
커튼이 조금씩 흔들립니다. 창틀이 열렸나 밀어보았습니다만 제대로 닫혀 있군요. 지금은 겨울밤입니다. 지난날 어머니도 이런 밤을 보냈을까요? 나중에- 나중에- 제가 아주 죽고 없을 때 제 자식들도 이렇게 늙은 모습으로, 쓸쓸하기 그지없는 마음으로 인생을 헤아려보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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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문학』247호 <2010. 5. 30.>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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