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단] 혹등고래 (정채원)
- 지면게재일 2025년 02월 28일 금요일

이따금 몸을 반 이상 물 밖으로 솟구친다
새끼를 낳으러
육천오백 킬로를 헤엄쳐온 어미 고래
물 밖에도 세상이 있다는 거
살아서 갈 수 없는 곳이라고
그곳이 없다는 건 아니라는 거
새끼도 언젠가 알게 되겠지
제 눈으로 제 등을 볼 순 없지만
그 혹등이 없다는 건 아니라는 거
그것도 더 크면 알게 되겠지
어미는 새끼에 젖을 물린 채 열대 바다를 헤엄친다
그런 걸 알게 될 때쯤 새끼는
극지의 얼음 바다를 홀로 헤엄치며
어쩌다 그런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는지
묻지 않을 수도 있겠지
코고는 소리 윙윙거리는 소리 울음소리 신음소리가 섞여
긴 노래가 되고
예언처럼 멀고 먼 주름투성이 바다
뻔하고 모호한
젖은 몸뚱이는
이따금 물 밖으로 힘껏 솟구친다
다른 세상을 흘낏 엿보면서
그렇게 숨을 쉬면서
[감상] ‘과학동아’, ‘사이언스’를 즐겨본다. 의외로 글감이 많다. 과학자들이 고래의 노래가 사람의 언어와 언어학적으로 닮았다는 점을 밝혀냈는데, 특히 혹등고래의 노래가 더욱 그렇단다. 혹등고래의 노래는 여러 짧은 요소로 구조화되어 집단 사이에서 원활하게 전승된다. 노래는 시다. 시를 노래하는 혹등고래라니! <시인 김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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