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NGO신문] 이경 기자 = 2014년 전국 시산맥 행사가 11월 29일(토) 오후 4시에 출판문화회관에서 개최된다.
이날 시상식을 가질 제5회 시산맥작품상에는 차주일 시인이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며, 수상작으로 차주일 시인의 「나는 누군가의 지주이다」가 최종 확정되었다. 상금은 3백만원이다.
시산맥작품상은 지난 한 해 계간 『시산맥』에 발표된 작품을 대상으로 기 추천된 시산맥 작품상 후보 작품 20편이 심사 대상이었으며 작품상으로서 공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심사위원들은 이번 시산맥 작품상으로 선정하며 ”차주일의 시는 삼각형으로 표상되는 튼실한 이미지의 영토 위에 세워진 아름다운 체험의 집이다.
이 시가 보여주는 튼실한 뼈대와 땀내 나는 살은 차주일 시인이 앞으로 세워나갈 시의 집이 얼마나 믿음직스러울지를 가늠해보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고 했다.
심사는 본지 주간 박남희 시인 외에 나금숙, 이가을 시인, 전해수 평론가가 맡았다. 기 수상자는 김종미 시인, 김점용 시인, 신현락 시인, 최은묵 시인이다.
시상식 당일 제8회 시산맥 신인상 김일곤 시인, 제9회 시산맥 신인상 양현주 시인 그리고 제9회 최치원신인문학상 수상자 이자인 시인에 대한 등단패도 함께 수여한다.
이번 시산맥작품상 수상자인 차주일 시인은 1961년 전북 무주에서 출생, 2003년 『현대문학』에 시가 당선되어 활동하다 2013년 하반기 『현대문학』등단을 반납하였으며 시집으로 『냄새의 소유권』이 있다. 현재 계간 시전문지『포지션』주간이다.
<제5회 시산맥작품상 수상작>
나는 누군가의 지주(地主)이다
— 늙은 삼각형의 공식
차주일
땀내 한 다랑이 경작하는 농사꾼과 악수할 때
손바닥으로 전해 오는 악력(握力)은 삼각형의 높이이다
얼굴이 경작하는 주름의 꼭짓점마다 땀방울이 열려 있다
땀이 늙은이 걸음처럼 느릿느릿 흘러내리는 건
얼굴에서 발까지 선분을 그어 품의 높이를 구하기 때문
소금기를 남기며 닳는 땀방울 자국을
사람의 약력(略歷)으로 출토해도 되나?
겨우내 무너진 밭두렁을 족장(足掌) 수로 재며
뙈기밭의 넓이를 구하던 이 허리 굽은 사내는 나의 첫 삼각형
등 굽혀 만든 앞품을 내 등에 밀착하고
새끼가 품의 넓이란 것 스스로 풀이하게 한 삼각형 공식
어린 손등에 손바닥을 밀착하여
까칠까칠한 수많은 꼭짓점을 별자리로 생각하게 한
엄지와 검지를 밑변과 빗변처럼 괴게 하여
절대 쓰러지지 않는 높이로 연필 거머쥐게 하고
내 이름자를 새 별자리 그리듯 처음 쓰게 한
피라미드처럼 몰락해버린 한 사내의 악력은, 왜 지금껏
사내의 품을 땀내로 환산하게 하는가
늙은 삼각형이 악수한 손을 놓지 않고 흔들어댄다
내 팔꿈치가 농사꾼의 허리 각도를 이해할 때
내 몸 통각점들이 지워진 선분을 다시 긋는다
내 이름자 획순으로 흐트러진 사내의 골격이 내 몸속에서 읽힐 때
연필심에 묻혔던 침만큼의 땀이 손바닥에 어린다
내 눈은 왜 땀에 젖은 손바닥을 꼭짓점으로 이해하는가
젖은 눈은 왜 나를 타인 되게 하는가
내가 누군가의 눈으로
그의 얼굴과 손과 발 세 변의 길이를 잰다
내가 누군가의 눈을 껌벅이며 곤혹스러워할 때
삼각형의 높이를 잴 눈물이 제자리에서 마른다
내가 이 점(點)에 염기를 경작하여
누군가의 발까지 이르는 높이 하나 짠내 나게 그으면
나는 누군가의 지주(地主)가 된다
<제5회 시산맥 작품상 심사평>
당위와 존재의 짐을 지고 사막을 걸어가는 낙타들
박남희(시인, 시산맥 주간)
시인이 시를 쓰는 행위는 일차적으로 어떤 이익이나 보상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 문단에 유수한 문학상들이 존재하는 것은 사막을 걸어가는 낙타에게 주는 물 한 모금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 한 모금을 마신 낙타는 얼마 가지 않아 또 다시 갈증을 느끼게 되겠지만 그 물 한 모금의 희망이 낙타로 하여금 사막을 걸어갈 수 있게 해주는 힘의 원천이 된다. 물의 소중함은 가장 목이 마른 낙타에게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시산맥 작품상은 시의 사막을 걸어가는 낙타인 시인에게 건네주는 물 한 모금과 같은 것이다. 시산맥이 수많은 낙타들 중에서 오랫동안 목말라있는 낙타를 찾아내어 물 한 모금 건네주는 일을 시작한 지 벌써 5년이 지났다. 사막을 건너는 낙타의 소중함은 낙타의 등에 무엇을 싣고 가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다르게 평가될 수 있다. 어떤 낙타는 당위(當爲,Sollen)라는 짐을, 어떤 낙타는 존재(存在,Sein)라는 짐을 지고 시의 사막을 걸어간다. 어떤 낙타는 이 두 가지 짐을 다 지고 사막을 건너는 경우도 있다.
철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죽음을 맞게 되는 불완전한 현존재(Dasein)로서 결코 인간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가치인 당위와 일치할 수 없지만, 궁극적으로 ‘당위를 지향하는 존재’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존재와 당위가 완전히 일치하는 주체는 신(神)밖에 없다. 시인은 신이 아니지만 시적 언어와 상상력을 통해서 존재와 당위의 일치를 꿈꾸는 자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의 언어는 존재와 당위 사이에서 춤추는, 주술을 지니고 있는 시적 영매(Mediums)라고 말할 수 있다. 시인은 시적 언어로 당위와 존재 사이에 생명이 살아 꿈틀거리는 시적 공간을 창조해낸다. 낙타는 목적지에 기다리고 있을 어떤 이익이나 보상을 바라고 사막을 걸어가지 않지만, 낙타의 등에 실린 사유의 짐들로 인해서 그가 걸어가는 길은 비단길이 되기도 한다.
우리 시단에서 좋은 시를 쓰는 시인을 찾아내어 작은 상을 주는 일은 사막을 걸어가는 수많은 낙타 중에서 어떤 특정한 낙타에게 물 한 모금 건네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선택에는 언제나 편견이 작용하게 마련이지만 시산맥은 이러한 편견의 신기루를 넘어서 새로운 시의 지평을 걸어가는 낙타를 찾아내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제5회 시산맥 작품상 운영위원회는 시산맥 회원들로 구성된 수많은 시인들의 추천을 받은 20편의 작품들을 대상으로 엄밀한 심사를 거쳐서 최종적으로 다섯 분의 시인을 선정하고 2차 심사를 하여 최종 수상후보작을 결정하였다.
최종 5편에 든 작품은 정채원 시인의 「새장을 키우는 사람」, 이덕규 시인의 「고슴도치」, 홍일표 시인의 「북극 거미」, 김지녀 시인의 「부화」, 차주일 시인의 「나는 누군가의 지주이다」등이다. 이들 작품들은 어느 것을 선정해도 좋을 만큼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서 심사를 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심사자들은 이들 중에서 이미 물을 마셔서 갈증이 덜한 시인들보다, 오랫동안 새로운 시의 사막을 걸어왔음에도 물 한 모금 얻어 마시지 못한 시인들로 대상을 좁혀서 최종적으로 정채원, 김지녀, 차주일 등 세분을 대상으로 심사를 한 결과 차주일 시인의「나는 누군가의 지주이다」를 제5회 시산맥 작품상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최종 후보작에서는 제외되었으나 뛰어난 작품성을 보여준 홍일표 시인의「북극 거미」는 마치 조정권의 「산정묘지」를 읽을 때 느껴지는 비장미마저 느껴지는 작품이다. 조정권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 역시 북극이라는 혹한의 공간을 배경으로 전개되는데, 아마도 극광(오로라)으로 표상되는 “공중의 혈맥을 더듬던 북극 거미”는 ‘국경 밖의 눈보라’가 되어 ‘눈썹 흰 노래’를 듣는 시인을 표상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여기서 시인으로 표상된 ‘북극 거미’는 ‘태어나지 않은 아이(詩)’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오는 ‘검은 남자(밤)’를 기다려 ‘얼음 같은 그믐달’로 형상화된 시를 포획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일종의 메타 시로 읽혀지는 이 시는 빛나는 비유를 통해 비장미가 느껴지는 새로운 시적 공간을 창출해내는 수작으로 평가된다.
이덕규 시인의「고슴도치」는 유적 속에서 발견된 ‘한 무더기의 녹슨 창’을 유월의 서늘한 숲에서 만난 ‘고슴도치’로 비유해내는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여기서 ‘녹슨 창’이 정치적으로 은폐된 ‘민초들의 무장봉기’로 형상화되면서 이 시는 일정한 알레고리의 형식을 갖추게 된다. 이 시는 아무리 오래된 정치적 억압도 결국은 고슴도치의 살을 뚫고 돋아나는 분노의 창에 의해 심판을 받게 되리라는 전언을 담고 있다. 시인이 ‘아름다운 창’으로 묘사하고 있는 ‘분노의 창’을 시로 본다면 이 시는 정치적인 폭력을 넘어서는 시의 위의를 보여준 명징한 작품으로, 힘없고 가난한 시인들에게 커다란 위로를 선사해준다.
정채원 시인의「새장을 키우는 사람」은 ‘새장’으로 비유된 인간의 육체 속에 존재하는 ‘울음의 주체’인 새를 명징하게 형상화한 작품으로, 이 시 역시 메타 시로 읽힌다. 여기서 시인의 육체는 “어느 쪽에 먹이가 더 많은지 어느 비탈에 걱정이 많은지”를 모르는 ‘눈 먼 방’으로 표상되어 “먹이보다 빛이라는 듯 제 그림자를 끌고 창가로 몰려드는 새들”인 시의 울음을 가둘 수 없는 새장으로 비유된다. 이처럼 새를 새장 속에 가두는 일은 지난하다. 하지만 새장 속에 갇힌 새의 울음을 듣는 일 역시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점에서 시인의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하지만 이러한 아이러니야말로 이 시의 긴장감을 유지시켜주는 시적 장치라는 점에서 이 시의 균형 감각이 돋보인다.
김지녀 시인의「부화」는 나뭇가지 끝에 달을 잉태하는 창 밖의 나무와 창 안에서 시의 부화를 꿈꾸는 주체인 시인을 ‘줄탁동시(啐啄同時)’의 관점에서 형상화한 작품으로, 이 시 역시 메타시라고 말할 수 있다. 시인에 의하면 시인이 시를 쓰는 행위는 나뭇가지 끝에 달이 뜨는 것과 같은 것인데, 그것은 ‘한 번도 잡아주지 않은 손(나뭇가지)’을 향해 달(詩)이 뜨는 것과 같은 지난한 일이라서 나무들이 사나워지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이는 새끼를 밴 짐승이 출산 때가 가까워지면 신경이 예민해져서 사나워지는 것과도 같은 이치이다. 그런데 시인이 꿈꾸는 알은 노른자위처럼 오롯하고 흰자위처럼 미끄러운 것을 흘리는 양면성을 지닌 알이다. 이것은 시가 지니고 있는 구심력과 원심력을 상징하는 것이어서 보다 명징하게 읽혀진다. 하지만 알을 둘러싸고 있는 밤이라는 껍질은 쉽게 깨어지지 않는다. 시인은 시를 부화시키는 일이 “늙은 얼굴보다 더 두꺼워진 손을 잡고/담을 따라 이끼가 번”지는 인내의 과정을 거친 후에야 가능하다는 것을 설파하면서, 끝내 ‘한 번도 잡아주지 않은’ 시인의 손 끝에서 달(詩)을 부화시키고 있다. 이처럼 이 시는 뛰어난 비유를 통해서 시창작 과정을 낯설게 현상화해 낸 수작이다.
끝으로 제5회 시산맥 작품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차주일 시인의「나는 누군가의 지주이다」는 시인 자신의 정체성을 농사꾼인 아버지의 존재성(삼각형)에서 찾아내는, 일종의 ‘뿌리찾기’라는 주제를 근간으로 하고 있는 수작이다. 특히 이 시는 앞의 시들에 비해 농사꾼인 아버지의 땀과 흙으로 표상되는 삶의 진정성이, 시인이 스스로 지주(시인)를 자각하게 되는 내밀한 과정 속에 녹아있어 감동을 더해준다. 이 시에서 농사꾼 아버지의 얼굴과 손과 발을 연결하는 삼각형으로 표상되는 땅은 시인이 아버지로부터 생래적으로 물려받은 시인의 영토라는 점에서 시적 당위성을 획득한다. 차주일 시인에 의하면 시인의 약력은 “땀이 늙은이 걸음처럼 느릿느릿 흘러”내려 “얼굴에서 발까지 선분을 그”으며 흘러내리는 “소금기를 남기며 닳는 땀방울 자국”같은 것이다. 시인은 “겨우내 무너진 밭두렁을 족장(足掌) 수로 재며/뙈기밭의 넓이를 구하던” 허리 굽은 사내인 아버지를 자신의 ‘첫 삼각형’ 즉 시인의 원형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시인의 사유는 드디어 “등 굽혀 만든 앞품을 내 등에 밀착하고/ 새끼가 품의 넓이란 것 스스로 풀이하게 한” 아버지의 삼각형의 공식이야말로 시인 자신의 삶의 공식임을 깨닫게 해준다. 이러한 시인의 깨달음은 시인으로 하여금 자신을 타자의 눈으로 새롭게 바라보는 객관적인 눈을 갖게 해준다. 시인에게 있어서 타자의 눈물 어린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는 일은 “염기를 경작”한 아버지의 땅을 물려받아 진정한 지주(주체적 시인)가 되는 일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차주일의 시는 삼각형으로 표상되는 튼실한 이미지의 영토 위에 세워진 아름다운 체험의 집이다. 이 시가 보여주는 튼실한 뼈대와 땀내 나는 살은 차주일 시인이 앞으로 세워나갈 시의 집이 얼마나 믿음직스러울지를 가늠해보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
끝으로 제5회 시산맥 작품상이라는 문패 위에 차주일이라는 뛰어난 시인의 이름을 새기게 된 것은 시산맥의 기쁨이다. 다시 한 번 시산맥 작품상 수상자로 선정된 차주일 시인께 축하의 인사를 드리고, 아쉽게도 마지막 선에 들지 못한 시인들께 죄송스러운 마음을 얹어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해드린다.
—《시산맥》2014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