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집 넣은 빵
정채원
잠도 공중에서 잔다는
짝짓기도 허공중에서 한다는 칼새처럼
칼집은 너무 깊지도 얕지도 않게
재빨리 십자로 스윽
비명 새어 나오지 않도록
어둠 속에서 혼자 발효되도록
차가운 방에 한동안 들어가 있어
포장을 벗어버린 생각들이
저희들끼리 밤새 치고받으며
절망이야 아니야
꼬집고 쓰다듬다 마침내
칼집을 부둥켜안고
반죽은 한껏 부풀어 올랐네
다 놓아버리는 순간
칼새는 바람에 날려다니는 지푸라기를 모아 침과 섞어
집을 짓는다지
새살이 차올라 저절로 딱지를 떨굴 때처럼
빵껍질은 노릇노릇 구워졌네
몰라보게 깊고 넓어진 칼집들
어떤 건 키에르케고르 입술 같고
어떤 건 화살표 같네, 뜨거운 오븐 너머
사랑은 변하고 환상은 깨어지며 비밀은 폭로된다 *
칼새가 내 심장을 스치고 날아가네
빵냄새에 코를 박고
빵을 한입 가득 베어 무는 시간
* 키에르케고르
『애지』2015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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