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품 상점
하재연
손대는 순간 깨져 있던
도자기인형의 화이트를 다시는
만질 수 없을 테지 이번 여름에는
왜 이 문을 열고 들어왔는지
설명할 수 없어서 누구도 묻지 않는 안부 인사가
너를 더 새까맣게 만든다
전구를 잔뜩 단 크리스마스 트리의 여름과
눈이 내리지 않는 여름과
비가 가득한 여름과
이파리들이 증식하는 여름과
반짝이지 않는 여름들이 쌓이고 쌓이고
먼지의 가게는 외롭게 완성되어 네 작은 손을
찌른 것일 테니
고귀한 것들은
두려운 거란다 얘야,
주인이 절대로 해주지 않는 이야기 같은 것들이
무한히 반복되며 흘러나오다가
툭, 하고 끊어져 버리기도 하는
소리가 죽으러 가는 곳
자라나는 너의 귓바퀴가 뱉어내는 파도와
유리문 바깥에서 돌아가는 계절들이 있었다
없는 팔다리가 가려운 몸통의 느낌으로
잘려진 계절들을 떠올리며
여름이 지나가고
다시
여름이 밀려오고 있었다
『현대시학』2016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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