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를 삼킨 유리—컵
박장호
‘유리—컵’에 물을 따랐다.
유리와 컵 사이로 쏟아지는 물을
‘유리컵’으로 받았다.
유리컵에 고인 물을 마셨다.
거실 화분의 흙이 젖었다.
식물들이 물을 빨아올려 스트레칭을 했다.
산세비에리아엔 산새가 날아와 시베리아를 뱉었고
덩굴식물은 설원을 피해 천장에 정글짐을 짰다.
꼭대기에 올라앉은 아이는
눈 녹은 물이 출렁이는 거실의 바다를 보았다.
파도가 부딪쳐 정글짐은 바위로 굳었고
물속에선 반짝 물고기 비린내가 났다.
유리컵 위로 솟은 바위섬에서
아이는 자라 어부가 되었다.
어부가 그물을 끌어올렸다.
그물 속에서
물고기를 삼킨 유리—컵이
쨍그랑
유리와 컵으로 쪼개졌다.
갈매기는 끼룩끼룩
유리컵을 쪼았다.
유리컵 속엔 너풀너풀
화분에 잠든 하얀 미역.
반년간지『이상』,2016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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