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밤의 네 번째 서랍

칼집/박해람

Beyond 정채원 2016. 12. 9. 22:56

칼집

 

 

박해람

 

 

전전긍긍하는

틈,

 

저 좁은 날도 집이 있다.

고독하다는 것

자신의 몸에서 나는 피 냄새를 주식主食으로 견디는 것이다.

 

우리는 무뎌진 칼날로 뼈를 삼고 있나

그 칼날로 혈연을 베고 단호斷乎한 이름이 되려는 것처럼

칼 한 자루씩 들어있는,

사월의 목련나무들은 칼춤을 춘다.

 

예리한 날도 가끔은

딱 맞는 집에 들어 보호받을 때가 있는 것이다.

초록을 베지 못한 칼은

훗날 휘청거리고

좁은 날을 따라 간혹 꽃이 핀다고 한다.

 

허공의 원한을 한바탕 섞은 후

칼이 귀가한다.

파릇한 물기슭이 제 집을 찾아들어가듯

노을이 저녁 속으로

편안해 지듯.

 

몸은 온갖 원한의 집인가

쓸쓸하게 쓰린 내상內傷을 다스리며

칼집과 목련나무들의 동병상련이

절그럭, 절그럭거린다.

 

 

『문학청춘』2016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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