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자각夢, 정채원

달아나는 자화상/정채원

Beyond 정채원 2017. 5. 4. 22:11

달아나는 자화상


정채원



그림 속 그를 볼 때마다

그가 살을 조금만 뺐으면 했다

그의 턱선이 더 서늘하기를

눈그늘에 고인 지루한 먹구름이 흩어지기를


그가 좀 더 자주 웃기를

그의 이마가 막 녹기 시작하는 얼음처럼 빛나기를

그가 나를 무심히 지나쳐

액자 너머를 응시하기를


내가 사랑한 건

그림 속의 그인지

나를 사랑한 건

그림 밖의 그인지


알 수 없다

나를 유리창처럼 지나쳐

허공 너머로 들어간 그가 그인지

깨지지 않는 그 안에서 뱅뱅 맴도는 내가 그인지


평범한 그 안에서

비범한 그를 포착하는 순간

그는 그림 속에도

그림 밖에도 이미 없다


이곳에서 오래가는 것은 없다


없는 그를 잡으러 뛰어가는 내가

오래 버려진 폐가 마당에서 울고 있는 새처럼

먼지 잔뜩 낀 액자 속

바람 속에 갇혀 있다




『시와 표현』2017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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