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무렵’-정채원(1951∼ )
번개오색나비 한 마리
거미줄에 걸려 있다
파닥거릴 때마다
거미줄만 더 친친 감기고 있다
번개오색나비 한 마리
거미줄에 걸려 있다
파닥거릴 때마다
거미줄만 더 친친 감기고 있다
가만
두고
보자
두고
보자
오색 날개가
허공 속에서
허공으로 바뀔 때까지
허공이
허공 속에서
번개를 불러올 때까지
자연계의 잔혹함을 그린 위 시를 ‘가만/ 두고/ 보자’. ‘가만/ 두고/’ 보니 그 잔혹함, 서늘히 견딜 만하다. 정채원은 저녁의 시인이다. 그의 시에서는 서쪽으로 기울어가는 햇빛 맛이 난다. 생식(生殖) 때문에 죽고, 죽음 때문에 생식하는, 모든 생명이 거쳐야 할 운명을 노래한 그의 다른 시 ‘골병나무’에서도, “6월이면 겨드랑이마다 붉은 꽃 피우던 나무/ 먹지도 못할 삭과를 9월이면 매달던 나무/씨방 터지는 소리 멀리서도 들리고” 가뭇없이 스러져가는 햇빛 맛이 났다. 번개오색나비는 번뇌라는 나비. 그 파닥거림은 손거울이 어지러이 되비치는 빛 그림자. 해가 아주 이울 때까지. <황인숙·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