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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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관계'/정채원

Beyond 정채원 2017. 8. 14. 22:48

詩가있는아침

[중앙일보] 이 기사는 2002-07-27 오전 00:00:00 에 실린 기사입니다.


    

뭉그러진 복숭아를 골라낸다

저마다 단단한 씨앗을 아집처럼 품고도

가슴 부빈 자리마다 단물이 흥건하다

서로 밀착된 만큼 깊이 멍드는

사이를 조금씩 벌려놓는다

너와 나 너무 가까워

그 누구도 끼어들지 못하는 사이

나는 네 그늘에 가려

너는 내 솜털가시에 찔려

소리없이 신음하고 있었으리라

-정채원(1951~) '관계' 중



단 것이나 향기로운 것은 대개가 무르다. 잘 터지고, 상한다. 쉬이 망가진다. 꽃이 그렇고, 과일이 그렇다. 애인이 그렇고, 가족이 그렇다. 사랑하는 만큼 미안한 일이 생긴다. 사랑하니까 멍이 든다. 상처가 생긴다. 유리병에 담긴 초콜릿처럼, 바다를 건너가는 소포처럼 이런 딱지를 붙여야겠다.'파손주의(fragile)'!

윤제림<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