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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에세이

김승희의 「애도 시계」 평설/최정례

Beyond 정채원 2018. 6. 2. 00:05



애도 시계


김승희



애도의 시계는 시계방향으로 돌지 않는다

시계 방향으로 돌다가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다가 자기 맘대로 돌아간다

애도의 시계에 시간은 없다


콩가루도 기도를 할까

콩가루가 기도를 할 수 있을까

콩가루가 기도를 한다면

어떤 기도를 할까

콩가루는 자기를 복원해 달라고 기도를 할까

콩가루가 복원될 수 있을까

콩가루에게 어떤 기도가 가능할까


애도의 시계는 그런 기도를 한다

가루가루 빻아져 콩가루들은 날아갔는데

콩가루는 콩가루의 소식을 모르고

콩가루는 콩가루의 주소를 모르고

콩가루는 향수를 모르고


콩가루는 다만 바람 속의 근심으로 바람의 애도를 한다

회오리를 타고 시시때때

애도의 시계는 꿈에서 거꾸로 나온다






(…)

죽음을 안고 있는 삶, 이러한 우리의 조건을 은폐하지 않고 드러냄으로써 살아있는 동안의 삶을 충만하게 살도록 하자는 것이 시가 추구하는 것 중의 하나일 것이다. 아니다. 사실 시는 아무것도 추구하지 않는다. 시는 죽음과 관련한 아무것도 우리에게 가르쳐주지 않는다. 우리는 죽음과 대화하는 법을 모르고 죽음은 완강하게 삶의 저편에 마치 다른 세상의 것처럼, 그러나 동시에 삶과 함께 여기 있을 뿐이다. 집이 있고 길이 있고 나무가 있고 허공이 있고 도시가 있고 그 속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것처럼 그냥 거기 있다.



『시로여는세상』2018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