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책소식

분열된 주체와 무의식/김혜영

Beyond 정채원 2013. 12. 28. 10:10

분열된 주체와 무의식…'나'라는 존재찾기

노컷뉴스 원문 기사전송 2013-12-10 17:13

 


 

정신분석학과 심리학을 이용해 현대시를 읽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 평론집이 출간됐다.

시인이자 평론가인 김혜영 작가의 '분열된 주체와 무의식'이 바로 그것.

이 평론집은 정신분석학과 심리학적 접근을 통해 현대시를 분석하고 시 속에 투영된 현대인의 무의식과 욕망을 조명했다.

책은 3부로 구성돼 각 주체들이 자신을 성찰하고 이를 통해 '힐링'의 단계에까지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제1부 '분열된 주체와 무의식'에서는 후기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적 주체들의 욕망과 억압된 무의식에 초점을 둔다.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자본의 잔혹한 힘에 매몰되어 허우적거리는 의식과 그 가면 뒤에서 끝없이 탈주를 꿈꾸는 욕동들을 추적한다.

남성 시인들의 시에서 분열된 주체가 출현하는 다양한 양상들을 세밀하게 분석한다. 부친 살해에의 욕망, 오브제 a(욕망의 대상)에 대한 과도한 집착, 혹은 물화된 주체 등을 통해서 현대 사회의 여러 병리적 실존들이 시 속에서 어떻게 변용되는지를 고찰한다.

제2부 '폭력과 유머'에서는 한 개인이 타자에게 자행하는 폭력과 그 폭력에 노출된 자의 상흔이 시 속에서 구현되는 양상에 주목하면서 동시에 국가 혹은 제도에 의해 자행되는 폭력의 속성과 양상을 검토한다.

인간에 내재한 공격성(Aggressiveness)은 한 개인 간의 관계에서도 발생하지만,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을 통해서 법의 이름을 걸고 합법적으로 발현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불특정 다수에게 가해지는 물리적 폭력과 제도와 법의 옷으로 갈아입은 채 자행되는 교묘한 현대 사회의 폭력에 대한 시인들의 예민한 촉수를 들여다본다.

제3부 '트라우마와 여성시'에서는 한국 문단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한 여성 시인들의 정신적 외상을 검토한다.

한국 사회가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가부장제적인 의식은 곳곳에 스며있다. 최근 문단에 대거 등단한 여성 시인들은 시를 통해서 심리적 외상의 탈출구를 찾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시 창작이라는 활동을 통해서 자신들의 숨겨진 트라우마를 표출하고 히스테리 혹은 신경증을 극복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을 받는 측면이 있다.

심리적 억압이나 과도한 긴장을 풀어놓는 해방구로써의 시적 장치가 현대사회에서 의미가 있어 보인다.

완전한 치료책은 아니지만 윤리나 금기에 얽매인 주체의 해소할 수 없는 욕망에 작은 틈 혹은 숨구멍을 시가 제공하기도 한다.

이 책은 '나'라는 존재는 어디에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독자에게 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데카르트의 코기토(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상큼하게 배반한 자크 라캉의 무의식에 존재하는 타자에의 욕망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하는 나는 무엇일까?'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라캉은 프로이트가 발견한 '무의식'이라는 영역에 주목하며 프로이트를 새롭게 해석한 프랑스 철학자.

저자는 이 책을 "현대시를 읽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고 현대인들이 자신도 알지 못하는 자신의 새로운 얼굴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썼다"고 말했다.

이 책에서는 이하석과 김유석, 김경수, 안효희, 정채원, 허혜정 등 서울과 지방, 남성과 여성 등 20명 가까운 다양한 계층의 시인들을 분석해 독자들은 현대시인들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어떻게 표현했는지를 엿볼수 있는 재미도 쏠쏠하게 느낄 수 있다.

저자는 부산대학교 영문학과와 동대학원을 나와 부산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시집으로 『거울은 천 개의 귀를 연다』 『프로이트를 읽는 오전』, 평론집 『메두사의 거울』을 간행했다.

 

 

푸른사상|153×224|양장|296쪽|값 22,000원.
 
mkjung@c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