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보영의 「입장모독」 감상 / 이원
입장모독
문보영
신은 부하들을 시켜, 세계에 입장하는 이들에게 수고비 대신 코스트코 빵을 나눠 주었다 사람들이 태어났다 빵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어리둥절했다 우리는 모여 골똘히 생각했다 왜 우리들은 빵을 받지 못한 걸까?
1) 옷이 한 벌 밖에 없었다 목둘레가 해진 런닝구만 걸치고 아랫도리 없이 입장하려 들었다
2) 영국식 파이프 담배 모양의 영혼을 소망하는 것으로 신성모독을 했다
3) 성당 의자에 너무 오래 앉아 있는 여자를 보며 그 모습이 상처 난 부위에 딱지 지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4) 매일매일 신나는 꿈을 꾸었고 그래서 꿈과 현실을 바꿔치기하고 싶었다
5) 신을 보며 저 사람은 소화기관에 작은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의심했다
6) 제대로 된 사람, 이라는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7) 그래서 학교를 잘 나가지 않았다
8) 세상의 모든 도서관이 불에 탔을 때 구하고 싶은 책이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9) 책을 너무 많이 읽었다
10) 그래서 희망을 무서워했다
11) 그래서 미친 개가 자꾸 쫓아왔다
12) 그래서 뛰어, 뛰어, 뛰어다녔다
우리가 빵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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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런 생각을 해보게 만들다니. 신성모독의 단서는 신이 제공했네요. 2) 즉시 영국식 파이프 담배를 검색해 보실 것. 3) 눈이 밖을 보도록 설계된 이유가 저곳에 있는데요. 4)이런 역전이야말로 신성이 존재한다는 증거지요. 5)문제는 소화기관의 의심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명명에 있었음을. 6) 학교에서는 왜 이 멋진 탐구를 포기했을까요. 학교는 이런 탐구하라고 만든 발명품인데요. 7)그러므로 두 말 할 필요 없고. 10)이라면 9)의 순기능. 8)은 10) 뒤에 읽으면 책의 정점. 10)은 실금이 생기는 감각. 11)어쨌든, 펄쩍, 펄쩍, 펄쩍. 12) 뜨겁다고. 꿈이라고. 신나는 맞짱이라고.
어리둥절한 우리는 모여, 골똘히, 이런 항변을 진행한 것이었어요. 신의 수신호를 해독한 것은 아니었어요. 핵심은 코스트코 빵 때문이니까요.
입장모독의 당사자는 지시를 내린 신이고, 아니 아니 신의 의중을 제대로 파악 못한 부하이고, 아니 아니 그 까짓것이 뭐라고, 왜 우리들은 빵을 받지 못한 걸까, 이런 생각을 만든, 빵을 못 받은 우리이지요. 이런 동선. 이런 처지에 주저앉았다고 여겨지나요? 그래요. 빵을 기다리고 있어요. 그런데 다시 잘 보세요. ‘우리는’ 아니고 ‘우리가’예요. 우리가 빵을 기다리고 있다. 주권은 빵을 못 받은 우리에게! 선언이지요. 책을 많이 읽으면 이렇게 되지요. 조사 하나로 세계를 바꾸지요. ‘맥락’이라는 실핏줄을 살필 수 있게 되지요. ‘빵을 기다리고 있다’가 ‘빵에 목숨 건다’는 뜻은 아니거든요.
이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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