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검쇼 1
정채원
오늘은 석민이지만
어제는 명호였지요
원래는 영섭이예요
지금 당신에게 영섭이가 말하는 거예요
영섭이의 말은 믿어도 돼요
석민이는 늘 쥐색 정장 차림
바지 주름 칼날 같이 세우고 다니는 사람
명호는 무릎 튀어나온 코르덴바지에
담뱃재 희끗희끗한 티셔츠 바람
회칼로 반대파의 목을 따고도 귀갓길
말기 암 어머니 전화 목소리에 귀가 젖는 사람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벙어리에게
맘 놓고 속내 다 털어놓듯
비밀처럼 꽁꽁 숨긴 당신의 아픔
다 털어놓아도 돼요, 영섭에게
이제는 당신의 눈빛만 보아도 다 알아들을 듯한 영섭에게
석민이도 아니고
명호도 아닌
영섭이가 지금 말하는 거예요
당신을 진정 사랑해요
아니, 결코 널 용서할 수 없어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지금은 문 닫을 시간입니다
널 죽여 버릴 거야, 오, 오...... 당신을 사랑해요
영섭이의 말은 믿어도 돼요
제 2 시집 『슬픈 갈릴레이의 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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