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자각夢, 정채원

이면도로/정채원

Beyond 정채원 2018. 12. 13. 17:08



   이면도로



   정채원



   폐허를 꼿꼿이 쳐들고 걸어갑니다. 아직 녹지 못한 눈이 노려보는 이면도로, 전봇대 밑엔 누군가 버린 일회용 심장, 발로 툭 차도 차가운 심장은 쏟아지지 않을 수도 있겠어요. 아직 다 쏟아지지 못한 심장은 다시 녹을 수도 있을까요? 아무도 폐허를 마시려 하진 않겠지만


   대로변에는 24시간 편의점이 있지요. 일교차를 잘 봉합한 척추 전문 병원도 있고 초고속으로 폭설을 전송한 LTE 대리점도 있지요. 김밥천국도 꽃집도 있고요. 빙하기에 배달된 꽃다발은 금 간 꽃병 속에 죽은 듯 살아 있고, 거꾸로 매달린 장미다발은 제 검은 눈꺼풀을 스스로 버리기도 하지요. 병원 부속 헬스장에선 요즘 ‘죽어가는 바퀴벌레’* 운동을 시작했어요. 몸을 좌우로 비틀며 힘껏 몸부림치면 백 년은 거뜬히 몸부림칠 수 있다네요. 뒤집힌 채로


   백년옥에서 특별 출감은 불가합니까. 그럼 차라리 출가는 어떨까요. 폐허를 필사하다 폐허를 찢어 던지고 폐허 밖으로 나가면 구깃구깃한 폐허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지나가지요. 더 질긴 폐허가 낄낄거리고 있지요. 차라리 폐허를 맛있게 뜯어먹으면서 서로를 힘껏 간질이는 게 폐허를 멀리 내던지는 길이라지요. 쪼글쪼글한 폐허의 배꼽에도 원본과 사본이 따로 있을까요. 눈을 자주 깜빡이던 오늘의 스페셜 폐허는 너무 웃겨 씹던 밥알이 튀어나갔습니다. 백미흑미혼미, 미끄러운 여기는 잘 삼킬 수 없는, 아니 숨길 수 없는, 당신의 속길입니다.



   *Dying Roach



   『시와세계』2018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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