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암
김이듬
이렇게 살면 폐인이 될 것 같아
짐을 챙겨 옆방으로 갔네
이렇게 살면 귀신이 될 것 같아
다시 짐을 챙겨 옆방으로 갔지
이렇게 살면 정말 귀신도 못 될 것 같아
짐 챙길 새도 없이 옆방으로 갔어
평생 이 방들을 차례차례
이런 방식으로는 안 돼
신비로운 복사기를 보며
영원히 중얼거릴 수 있다면 좋겠니
나는 옆방으로 가네
무릎 꿇고 바닥을 닦다가
다음 방으로 다음 방으로
빼라기 전에 빼는 게 사랑의 역사라면
고독하게 수행되는 끝없는 이동
칸토르비치는 이 작업을 무한이라고 했나
밤이면 불을 켜고 가스 불에 국을 데워
돈 내지 않으면 모든 게 끊어지네
끝은 끝 방
고요와 평화
불이 꺼지면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갔다 돌아와야지
나는 젖겠네
시집 『명랑하라 팜 파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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