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합(一合)
박무웅
풍란은 필시
어느 무사의 칼집에서 도망친 것이
분명하다
챙챙 칼싸움 중에
파란 불꽃같은 씨앗 한 알
바위틈에 슬쩍
떨어뜨린 것이 분명하다
지친 칼의
후생이 틀림없다
전생에서 무수히 베었던
그런 목숨들 말고
무심한 바위를 쩍 베려는 것이
분명하다
보시라, 이미
반쯤 갈라놓은 바위의 틈에
뿌리를 내리고
푸른 하늘을 칼집으로 쓰고 있지 않은가
필생(畢生)의 일합(一合) 끝에
흰 꽃을 피우고 있지 않은가
『시와표현』2018년 겨울호, 이달의 시인 근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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