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밤의 네 번째 서랍

일합(一合)/박무웅

Beyond 정채원 2018. 12. 17. 00:47


일합(一合)


박무웅



풍란은 필시

어느 무사의 칼집에서 도망친 것이

분명하다


챙챙 칼싸움 중에

파란 불꽃같은 씨앗 한 알

바위틈에 슬쩍

떨어뜨린 것이 분명하다


지친 칼의

후생이 틀림없다


전생에서 무수히 베었던

그런 목숨들 말고

무심한 바위를 쩍 베려는 것이

분명하다


보시라, 이미

반쯤 갈라놓은 바위의 틈에

뿌리를 내리고

푸른 하늘을 칼집으로 쓰고 있지 않은가


필생(畢生)의 일합(一合) 끝에

흰 꽃을 피우고 있지 않은가



『시와표현』2018년 겨울호, 이달의 시인 근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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