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역학
하나둘 우물이 사라졌다
마을과 마을에서
'깊이'가 밀려난 것이다
우물물 고이던 시간 속에선
두레박이 내려간 만큼
물 긷는 이의 이마에도 등불이 자라곤 했다
꾸준히 달이 깎이고
태양과 구름과 별들이 광속을 풀어
말고 따뜻한 그 물맛이 하늘의 뜻임을 알게도 했다
하지만, 속도전에 뛰어든 마을과 마을에서 우물은 오래가지 못했다
노고를 담보하지 않아도 좋은 상수도가 깔리자
물 따위는 쉽게ㅡ쉽게ㅡ채우고 버릴 수 있는
값싼 거래로 변질/전환되었다
엔트로피의 상자가 활짝 열린 것이다
가뭄에도 사랑을 지켰던 우물 속의 새
언제 스쳐도 깨끗하기만 했던 우물물 소리
그런 신뢰와 높이를 지닌,
옛사람, 무명 옷깃 어디서 다시 만날까
그리고는 우물가에 집 짓고 살까
《시인동네》2020년 7월호
'밤의 네 번째 서랍'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청殺靑/오정국 (0) | 2020.09.19 |
---|---|
아무렇게나 사랑이/김병호 (0) | 2020.09.12 |
데드 캣 바운스/김재훈 (0) | 2020.09.01 |
오늘 나는 산책을 했다/로베르 데스노스 (0) | 2020.08.12 |
목도장/장석남 (0) | 2020.08.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