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자각夢, 정채원

블랙 아이스/정채원

Beyond 정채원 2020. 12. 6. 20:00

   블랙 아이스(black Ice)

 

   정채원

 

 

   한번 녹았던 마음이 다시 얼어붙으면 흉기가 된다

   그림자 속에서도 애써 꽃을 피우다가

   화분을 내동댕이치다가

 

   눈보라치는 밤, 얼어붙은 기억의

   터널을 지나면 교각이 있고, 교각을 지나면 또 터널이 있다

   울음소리도 미끄러지는 터널을 지나

   허공에 걸려 홀로 떨며 서 있던 그림자

 

   터널에서 무심히 달려나오는 생명을 받아 안아

   검은 이빨로 아작내는 허공의 검은 아가리

 

   응달에서 오래 떨며 너를 기다렸어, 내 얼어붙은 팔다리를 꺾어서라도

너를 안으면 너의 목을 조르면, 너의 뜨거운 피로 얼어붙은 나를 녹여줄

수 있겠니?

 

   급커브를 돌자마자 마주치는 얼굴

   먼지와 눈물이 함께 엉겨 붙은 검은 색

   살짝 젖어 있던 얼굴이 돌연

   꽃모가지에 얼음송곳니를 꽂는다

 

   누가 걷어 찬 화분일까

   산산이 부서져 중심이 잡힐 때까지

   제 칼날로 저를 멈추기까지

   제동거리가 예상외로 길었다

 

   맘껏 타오르지 못한 불은

   재 대신 얼음을 남긴다

   모든 얼음은 한 때 불이었다

 

 

   《시와편견》 2020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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