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이면서 둘, 여럿이면서 하나 ‒정채원 시집 『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해설 고 봉 준 1. 예술은 반복을 통해 스타일을 창조한다. 스타일이 예술가 개인의 고유명, 즉 서명(sign)과 같은 것이라면, 거기에는 이미-항상 반복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특정한 어휘, 대상, 소재, 이미지, 그리고 모티프(motif)……. 모든 반복에는 징후적 가치가 있다. 음악과 회화에서의 반복이 스타일 - 우리가 낯선 그림을 보고 특정한 화가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는 이유가 바로 반복 때문이다 - 과 연관된다면, 시에서의 ‘반복’은 시인의 리비도(libido)와 연결된다. 특정한 사물에 리비도를 반복적으로 투사한다는 것, 그것은 시인-주체의 자율적인 운동이 아니라 그가 대상에 매혹 내지 포획되어 있다는 징후이다. 정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