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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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구두/손음

새의 구두 손 음 여섯 살의 구두를 오래 신고 있었네인생은 여섯 살외눈박이 그믐이 혼자 놀러 왔네여섯 살이 많이 늙었네또각또각 또각또각나는 언제 잊으려나나는 언제 잠드려나나는 시를 쓰고나는 새를 쓰고 간밤의 꿈을 가지고 놀러 갔다흰 사과푸른 언덕귀가 없고입술이 없고그래도 다행이고 삶은 견딜 만한 것이 못 되지만어떻게든 견디지만아름다운 귀신이 눈물을 보내왔네 흰 마당에서점...점을 싸는, 똥을 싸는 새 한 마리또각또각 또각또각 어린 구두 한 마리 계간 《詩로 여는 세상》 2025 봄호------------------손음 / 1964년 경남 고성 출생. 1997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 1997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칸나의 저녁』 『누가 밤의 머릿결을 빗질하고 있나』, 연구서 『전봉건 시의..

눈에 뜨이지 않는 것들/이장욱

눈에 뜨이지 않는 것들​ ​이장욱   당신,  안 보는 사이에 뭔가 달라졌다. 미간이 넓어졌나. 말투가 좀 외국인 같네. 왜 유령을 좋아해.​ 무엇이 당신을 수정하고 있다. 죽은 사람의 책상 위에 앉은 먼지 같은 것이 마음의 물속에 가라앉은  쇠못 같은 것이 또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옛 일​ 자꾸 콕콕 찌른다. 어제의 거울과 오늘의 거울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는데 어째서  길에서 자꾸 외국인을 만나고 피부에는 알러지가 생기고 죽은 사람의 책상에 앉아서 보내는 시간이  길다.​ 당신,  눈에 뜨이지 않게  당신이 아니다. 당신은 어딘지 이상한 미소를 짓고 나는 의심스럽게 그것을 바라보고 시선은 마주치지 않는다.  안 보는 사이에  내가 당신을 수정했는지도 모르지. 책상 위에 유령의 물글씨가 적..

열흘 간의 유령/강정

열흘 간의 유령 강 정 사진 속 얼굴을 연필로 그리고 있자니,지금 어딘가 살아 있을 낯선 사람이나보다 먼저 살다 간 내 할머니 같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젊은 여인이오래전에 나를 보았다고 한다내 이름이 낯설어지고건물들의 등고선이 세 배나 내려앉는다 잘 다니던 길에 노란 무덤들이 봉긋하다거기 걸터앉아 술이나 한잔 마실까 하는데태양이 뚜벅뚜벅 네 다리로 걸어와무릎을 조아린다 길 잃은 개의 눈을 바라보듯흑점을 가만 보자니,수백 년 전 누가 그린 그림 속 천사의 날개가 불타고 있다 술잔에 옮긴 불덩이가 빛의 사다리를 따라다시 하늘로 오른다사흘 동안의 기억이 재가 되어 흩날리다가무덤가 동그란 돌멩이 되어 오늘 내 방에 구르고 또 다른 사흘 동안 주고받은 말들이거울 속에서 피를 흘린다 그림을 다 그리고 났더..

2025 제6회 오장환 디카시 신인문학상 공모전

2025 제6회 오장환 디카시 신인문학상 공모전 사진정보 [ 2480x3564 ]2025 제6회 오장환 디카시 신인문학상 공모전 디지털 시대를 맞이하여 새로운 문학 장르로 떠오른 디카시의 창작인구 확산과 세계화에 이바지할 역량 있는 신인을 찾습니다. 한국 아방가르드 시단의 선구자인 오장환 시인을 기념하여 올해로 제6회 째를 맞는 ‘2025 오장환 디카시 신인문학상’ 공모전을 시작합니다. 1 주 최 : 보은문화원2 주 관 : 한국디카시연구소3 후 원 : 충북 보은군, 한국디카시인협회4 주 제 : 자유5 응모자격 : 국내외 미 등단 신인(시 장르 신인상, 디카시 신인문학상, 문예지 디카시신인상, 신춘문예 디카시부문 수상자는 응모할 수 없음. 단, 다수의 수장자가 있는 신춘문예의 경우 대상 수상자만 응모 ..

디카시 2025.04.23

찔레꽃 패스워드/김영찬

찔레꽃 패스워드 김영찬 들찔레 장미꽃 향기는 이유도 없이 왜 왜 왜어찌하여 슬픈가슬프니까 그냥 슬프다그 향기는 생각할수록 더 멀리 날아가서너에게까지만그토록 깊고도 외로운비밀 찔레꽃 패스워드와 비밀번호를 몰라서 아무도열어볼 수가 없다슬프도록 낯선 그 침묵은낮12시 꽃 속에 점지해 놓은 그 하얀 고독으로 눈물 찔끔흘려도 상관없이 상큼한낮달 지나가 비로소 깊이 잠든밤12시 정오의 햇살에서 한밤중 자정에 이르기까지찔레꽃 그 그늘에 눌러앉아열아흐레 꽃 핀 얼굴 꽃 진 자리에 머뭇머뭇네가 서 있다말이 없는 낮달처럼 하얗게 너는 서 있다 계간 《시와 편견》 2024 겨울호-------------------------김영찬 / 충남 연기 출생. 외국어대 프랑스어과 졸업. 2002년 계간 《문학마당》 등단. 시집..

희망이라는 절망/정한용 시집

봄의 전언 정한용 뒷산 숲에 까치가 돌아왔다. 오늘 아침 보니 모두 다섯 마리.겨우내 보이지 않더니, 봄빛에 홀려 기억을 거슬러 돌아왔나 보다. 다섯 번째 혹은 여섯 번째 감각이 일깨워 주었을 수도 있겠지. 무딘 내 판단으로는 알 수 없는 일. 누구에게나 가슴이 시릴땐 숨어들고 싶은 곳이 있으리라. 누구도 찾지 않는 구석이라도,아무도 노크하지 않는 방이어도 좋다. 투명해서 자신에게만 보이는 영역이라면 다 좋다. 울어도 흔적 없이 눈물을 말릴 수만있다면, 비록 사랑이 고요히 가라앉아 상처를 구분하기 어렵게된다 해도, 상관없는 일. 그곳에선 시간이 느리게 움직이다 드디어 멈출 것이다. 그러면 된 것이다. 돌아가도 무탈할 때가 되는것이다. 두 마리였던 까치가 다섯이 되고, 모든 존재는 껍질을벗게 된..

책소식 2025.04.21

바니타스/김래이

바니타스 김래이 봄은 오면서 가는 것 같다고 당신이 말할 때벚꽃은 날아가면서 사라진다고 나는 말했죠 거리는 잘 차려 입은 사람들로 가득한데사진을 찍을 때만 걸음을 멈추죠 한 여자가 줄기를 잡아채 볼에 가져가죠여자의 친구가 바통을 넘겨받고잡아당길수록 벚꽃은 자꾸 돌아가고 싶죠 허공으로 화관을 쓰고 날개옷을 입고 하나 둘 셋 소리에얼어붙는 요정들이 있어요 꽃 같은 건 관심이 없지만요정의 흔적은 남겨서 하원해야 된대요 나무는 정물일까 동물일까 당신이 물을 때공중에서 밝은 건 땅에서도 밝다고 나는 답하죠 네 사람이 한 나무 아래 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어요사진첩에 담긴 같은 풍경이 우리를 더 닮게 하나요한 장 두 장 아름다운 건 저장하고 싶어요 자꾸 절단하고 싶어요 이게 다 벚꽃이라는 계절 때문이죠가서 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