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녑 박수현 여름나기로 단골 정육점에서 처녑을 샀다소의 세 번째 위장인 처녑은천 장의 잎새라는 뜻이랬다검정 비닐봉지에 싸인 채 서너 근으로갈무리된 전 생애의 중량밀가루를 묻혀 아코디언 같은 주름을 치댄다위장 하나 다스리는 일이첩첩산중 만경창파를 이고 넘는 것 같다는데어쩌자고 이 초식성 짐승은깊고 어둔 위장을 네 개나 붙잡고 있는 걸까쇠뜨기, 둑새풀의 독하고 푸른 숨결과매미의 울창한 울음과마지기 마지기 쏟는 작달비를 오래 되새김질했겠다 질기고 무더웠던 여름날을 견뎌내느라크고 순한 짐승의 위장 같은울음의 겹 안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 처녑 한 젓가락을 기름장에 찍는적막한 허기의 저녁,씹을수록 싱싱해지는 천 장의 이파리가가망 없이 몸을 뒤집는다 시집『처녑』, 황금알 시인선 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