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 그 나무
나무에서 한 사내 걸어 나와 띄엄띄엄
꽃 핀다, 죽음은 버금딸림화음으로
싱싱해진다, 서서 잠드는 전신주에 기대면
쓸쓸해, 다시 나무로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있으려나,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마다
꿈이 덜컥인다, 스위치를 찾을 수 없어
어두워, 사내의 등으로 무너지는
어둠에, 비가 내리면 젖지 않은 꿈자리가
축축해, 이름만 젖고 잎이 젖지 않는
이름을 잊은 나무에게로 걸어가다 보면
조등弔燈처럼 피어나는 꽃
스스로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시간이
길어진다, 세월은 흘러 흘러 바다에 이르러
퇴적된다, 바다에 발을 담근 채 키가 자라는
사월은 짠맛이 난다
개기일식
사과를 꿰뚫은 화살처럼
갸르릉 접속부사로 내리는 빗물
게다가그래도그래서그러나그러면그런데그러므로
날아와 심장에 얹히는 말처럼
누군가 먹고 버린 사과 뼈가 배수구에 걸려 있다
그럼에도불구하고가끔보통종종항상언제나때때로
다시 갸르릉 물소린자 사과 소린지
부사 하나가 가슴에 걸려 내려가지 않는다
슬프다와 아프다 사이를 한 뼘쯤 띄고
외롭다와 괴롭다 사이를 한 발쯤 띄고
이 밤 그렇지만그리고더구나따라서오히려하물며하지만
이쪽과 저쪽 사이를 접속부사로 건너다가
축축하다와 서럽다 사이에
징검다리를 놓는다.
저렇게 버려지는 게 사과의 꿈은 아니겠지만
지구 저편 테러 폭발음이 심장을 두드린다
가슴 복판에 떨어지는
쿵,
한참을 올려다본다
휘청, 붉은
달
변종태 시집 《목련 봉오리로 쓰다》, 시작시인선 0354
'책소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떤 사람이 물가에 집을 지을까/강신애 시집 (0) | 2020.12.26 |
---|---|
치자꽃잎 같은 시간들/임재춘 시집 (0) | 2020.12.23 |
프란츠 카프카(세계문학 단편선 37)/박병덕 옮김 (0) | 2020.12.20 |
당신은 첫눈입니까/이규리 시집 (0) | 2020.12.18 |
달나라의 장난(복간본)/김수영 (0) | 2020.1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