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광산
모르겠다,
언제 꽃이 피고 졌는지 또 꽃이 피고 질런지
누가 봐 줄 거라 믿고 꽃이 피나
아무도 안 볼 거라 단정하고 꽃이 안 피나
꽃소금과 소금꽃 사이
짠맛 하나로 일생을 허비했는데 그게 마지막 문제라 한다
뒤돌아보고 첫 문제로 되돌아갔거나
뒤돌아보지 않고 마지막 문제까지 마쳤거나
이미 동굴 벽 다 점령해 버린 허연 도배지 앞
창세기는 다시 시작됐다
모르겠다
피고 지고, 믿고 안 믿고의 사지선다에서 벗어나
그냥
이 자리에 소금 기둥이 되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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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작품의 소재인 '소금'에 집중해서 그것의 의미 생성 과정을 살펴보자. 인간이 사용하는 자연의 물질들이 대부분 그렇듯 다른 성분들과의 구별과 삭제를 통해 소금은 생산되고, 그렇게 생산된 소금은 다시 자신의 형태를 변형하는 것으로 그 쓸모를 다하게 된다. 마치 단어를 고르고 다듬어서 문장을 만들고 그것이 다시 맥락 안으로 들어가고 나면 단어적 차원을 벗어남으로써 의미로 소통되는 과정과 흡사하다. 언어와 소금을 사용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의 삶은 결국 다양한 가치들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훼손해야 하는 선택을 지속해 나가야 한다.
따라서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강력한 욕망이 발현되는 순간들은 죽음과 언제나 한 쌍을 이룬다. 그것은 죽음이라는 사건으로 도래할 모든 의미의 정지가 불러일으키는 상황의 반작용으로도 볼 수 있다. 그 어떤 의미도 수신될 수 없고 따라서 되돌아오지도 못한다는 점에서 죽음은 우리에게 의미의 비대칭이 가장 심화되는 경험을 제공한다.
(……)
이곳은 우리에게 익숙했던 언어의 의미 생성 기능이 삭제되어 버린 곳, 따라서 대상과 직접 결부된 감각의 '홀소리'만이 가능성으로 존재하는 '창세'의 시공간이다.
(……)
시인은, 여전히, 아무것도 만들지 않으며, 어떤 것도 약속해 주지 않고 있다. 우리는, 이제 막, 의미의 중력에서 풀려나 우리의 감각으로만 가능한 자유로운 유영을 시작할 수 있을 뿐이다.
남승원 문학평론가의 해설 「비대칭의 지점들」중에서 발췌
이인원 시집 《그래도 분홍색으로 질문했다》, 파란시선 0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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