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와 한강 다리
개미 한마리가 한강 다리를 지나가면 다리가 휘겠니, 안 휘겠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개미 한마리에 어떻게 한강 다리가 휘겠어? 이 세상 개미 모두가 북한산만큼 모여 한강 다리를 건너가면 다리가 휘겠니. 안 휘겠니? 그야 당연히 휘겠지, 북한산 실은 기차가 지나가는 것처럼. 그렇다면 개미 한마리가 지나갈 때도 눈에 보이지는 않겠지만 그 한마리 무게만큼 한강 다리가 휘어야 하잖아. 거의 무에 가까운 무게지만 무게는 무게거든. 그 무게만큼의 어떤 생각,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는 한 생각이 드나드는 것 같다. 계속 오고만 있고 아예 와버리면 안 된다는 듯이, 네 생각도 그렇게 오더라. 까맣게 잊고 있다가도 어느날 깨어보면 분명 간밤엔 오고 있었고 어느새 가버린 거야, 그래야 다시 올 수 있다는 듯이. 존재의 무게가 거의 없는 것이, 생각의 무게 같은 것이 지나간다. 방금 한강 다리가 아주 약간 휘청했다.
입자들의 스타카토
반짝임, 흐름, 슬픔
반짝이는 것과
흘러가는 것이
한 몸이 되어 흐르는 줄은 몰랐다
강물이 영원의 몸이라면
반짝임은 그 영원의 입자들
당신은 죽었는데 흐르고 있고
아직 삶이 있는 나는
반짝임을 바라보며 서 있다
의미가 있는 걸까
의미가 없는 걸까
무심한 격랑과 무차별 속으로
강물이 흘러간다
최정례 시집 《빛그물》, 창비시선 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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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골수이식을 앞두고 불안해하던 시인과의 마지막 문자가 11월 6일 이었는데,
희망을 걸자고 함께 말했는데,
1월 16일 새벽
결국 떠났다.
시인이 그렇게 반짝이면서 흘러갔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아름다운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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