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아는 꼭짓점들
최연수
컹컹 짖는 언덕 아래와 건너다보이는 불빛과 나는
조용한 삼각
늦은 밤을 견디는 꼭짓점들이다
소문은 잠들어
남은 불빛을 당겨
내가 다 써버렸다는 건 아무도 모른다
안경을 쓰는 것보다
깜깜한 나를 환히 볼 수 있다
미래를 보기 위해
접질린 길은 한걸음 물러서야 보이고
더 아파본 뒤에야 빠져나갈 구멍이 생긴다
새벽달이 끼어들어도
생각하는 반대편과 생각이 있다는 듯 짖어대는 언덕만이 나와 가능한 삼각
불면은 배경이다
홀수에 익숙하지 않은 짝수들
안에서 사랑하고 밖에서 의심했다
자신도 모르게 덩치 커진 아우성은
소란스러운 고독 속에서만 물리칠 수 있다
어둠이 한 점을 갉아먹은 뒤에야 들어서는
외로운 삼각
모서리를 비추는 거울은 여전히 네모
각자 툭 튀어나온 꼭짓점도 짝수라 믿는다
빈 칸이 많은 캔디통
여기,
오래 녹여 먹는 달랑 한 개의 이름
길이거나
꽃
여백이 많은 캔디통
동그란 소리가 난다면 둥근 뚜껑이 있을 것이다
그때 까맣게 자란 눈동자들은
눈꺼풀 여닫은 캔디
열 번쯤 울고 난 뒤에야 우리가 다 녹았지
차르륵 박하향이 달려가다
느닷없이
두 개의 바퀴가 한복판으로 넘어지고
서로를 일으키지 못한 우리가 헛돌았다
오래도록
네 개의 각을 지운 둥근 캔디통, 그곳엔
너 하나만 들어 있다
여름 반대편으로 달려간 길은
같은 이름을 되 녹이고
여럿으로 바래진 빛깔
안녕은 혼자일 때 녹는다
최연수 시집 《안녕은 혼자일 때 녹는다》, 상상인 시선 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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