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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은 혼자일 때 녹는다/최연수 시집

Beyond 정채원 2021. 3. 8. 00:02

나만 아는 꼭짓점들

 

최연수

 

 

컹컹 짖는 언덕 아래와 건너다보이는 불빛과 나는

조용한 삼각

늦은 밤을 견디는 꼭짓점들이다

 

소문은 잠들어

남은 불빛을 당겨

내가 다 써버렸다는 건 아무도 모른다

 

안경을 쓰는 것보다

깜깜한 나를 환히 볼 수 있다

미래를 보기 위해

접질린 길은 한걸음 물러서야 보이고

더 아파본 뒤에야 빠져나갈 구멍이 생긴다

 

새벽달이 끼어들어도

생각하는 반대편과 생각이 있다는 듯 짖어대는 언덕만이 나와 가능한 삼각

불면은 배경이다

 

홀수에 익숙하지 않은 짝수들

 

안에서 사랑하고 밖에서 의심했다

 

자신도 모르게 덩치 커진 아우성은

소란스러운 고독 속에서만 물리칠 수 있다

어둠이 한 점을 갉아먹은 뒤에야 들어서는

외로운 삼각

 

모서리를 비추는 거울은 여전히 네모

각자 툭 튀어나온 꼭짓점도 짝수라 믿는다

 

 

 

빈 칸이 많은 캔디통

 

여기,

오래 녹여 먹는 달랑 한 개의 이름

길이거나

 

여백이 많은 캔디통

동그란 소리가 난다면 둥근 뚜껑이 있을 것이다

 

그때 까맣게 자란 눈동자들은

눈꺼풀 여닫은 캔디

열 번쯤  울고 난 뒤에야 우리가 다 녹았지

 

차르륵 박하향이 달려가다

느닷없이

두 개의 바퀴가 한복판으로 넘어지고

 

서로를 일으키지 못한 우리가 헛돌았다

오래도록

 

네 개의 각을 지운 둥근 캔디통, 그곳엔

너 하나만 들어 있다

 

여름 반대편으로 달려간 길은

같은 이름을 되 녹이고

 

여럿으로 바래진 빛깔

 

안녕은 혼자일 때 녹는다

 

 

 

최연수 시집 《안녕은 혼자일 때 녹는다》, 상상인 시선 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