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자각夢, 정채원

케미스트리/정채원

Beyond 정채원 2021. 8. 2. 18:27

케미스트리

 

 

자발적으로 두 개의 원소로 분해될 수 없는

물처럼 두 사람은 흐른다

 

음극과 양극 사이에 격막을 두고

둘은 서로를 밀어내야만 존재할 수 있는

자석의 같은 극이었을까

너무 닮아 서로를 모욕하는 사이처럼

 

외면한 채 마주보는 심장은

서로에게 둥그런 피를 돌리지 못하고

 

남들에겐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을

자신도 보고 싶지 않은 것을

기어이 보고야 마는 눈

오후의 뇌 속에는 어떤 뾰족한 물질이 흘러나오는 것인지

 

성공한 듯 보였으나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화학 실험처럼

끝내 수소와 산소로 돌아가지 못하는 물속에서

한동안 전류가 저릿하게 흘러갔을 뿐

 

숙성도 되기 전에 변질된 와인을 맛보며

이 맛이 아닐 텐데

이 향이 아닐 텐데

코르크 마개 탓부터 하는 사람들

 

화합하지 못한 이유와 결별하지 못한 이유는

어떤 화학식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번번이 같은 매듭에서 낯익은 벨이 울리고

실패해야 하는 이유, 실패해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

함께 숨 쉬는 물속에서 명징한 기포가 발생하지 않고

멜로디처럼 탄식처럼 전류가 헛되이 흐르다 멈추는 이유

 

부서진 계단을 지나

유리조각 박힌 꽃담을 지나

물은 오늘도 흘러간다

 

 

 

《시인광장》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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