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
이덕주
너는 끝없는 공중이다. 공중을 끌어안고 또 다른 공중을 본다.
공중이 커지는 오늘, 무심코 공중을 던져버린다. 이만큼 따라오라고 소리치던 그 소리, 우리는 공중을 교환한다. 오늘을 주고받는 십자LED등, 천정을 키우고 공중은 낮아지고,
눈이 부시다.
너는 입구에 서있다. 공중의 커튼이 열리고 캐노피가 물러선다. 선잠을 잔다. 헤엄쳐 절벽에 닿는다. 아침과 공중이 오고 불빛으로 간다. 불빛을 만나 태어나는 공중을 받고
너를 껴안는다.
어디로 날아가는가. 너의 얼굴, 캄캄한 공중으로 흩뿌려지는 빗방울에 부딪친다. 숨소리도 건반 사이 뛰어다니고, 밤이 닫히고 파고드는 소리, 공중의 눈동자 흔들리고
누워버린 공중을 보며 비워두었던 공중으로 돌아온다.
너를 기다린다. 텅 빈 공중을 쌓아둔 채,
웹진 《시인광장》 2020년 8월호 발표
눈의 유감
이덕주
눈이 눈을 쌓는다
하얀 즙을 흘리며
너의 몸을 핥고 있다
손을 잡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그래 무릎을 꿇고
조각난 뼈들이 보물을 캐는 듯
밑을 뚫고 춤을 추는 듯
입술이 부딪친다
은붙이 빛살을 뿌리며
너와 나를 내려놓고
상엿소리를 낸다 거울 속 너의 눈,
눈을 헤치며 뛰어든다 출렁이는 안과 밖,
나를 깨어나게 할까 어디에서
얼음언덕을 지우고
지워지는 발자국을 지우고
영하의 눈동자를 붙잡는다
어딘가에서 손을 잡고
태어나는 소리를 듣는다
《시와세계》 2021년 가을호
이덕주 시인(1951 ~ 2021. 12. 05)
2005년 시집『내가 있는 곳』으로 시작 활동. 2012년 《시와 세계》 여름호에 〈적기 수사법의 현대적 응축과 확산〉으로 당선되어 평론가로 등단. 시비평집『톱날과 아가미』(2018)가 있음. 《시와 세계》 편집인 역임, 현재 《시와 세계》 편집위원.
이덕주 시인이 2021년 12월 5일 저녁 심장마비로 타계하셨다고 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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