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이라는 이름의 기계
언 땅이 녹고
전잎 제치고 올라오는 황새냉이 어린 싹
뿌리 식물은 주변을 넓게 돌려 파 들어 올린다
중심 뿌리도 없이
물길을 감지하며 뻗어나간 뿌리줄기들
땅속에 드넓은 지도를 그려 놓았다
분열증적 에너지로 경계와 구분을 전복시키며
무無 혹은 다多 방향으로
새로운 세계를 이룩하고 있었다
머물러 있지 않는 유목민처럼
고원을 넘고 넘고 넘고 있었다
숨 쉬고 먹고 노래하고 달리는
욕망이 실현되는 현장에서
종착역도 시발점도 없는
선을 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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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야말로 세계를 재현이 아니라 생성, 동일성이 아니라 차이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인의 입장을 잘 보여준다. "욕망"은 신경증으로 포획되지 않는 분열증의 언어이며, 정주가 아닌 "유목민"의 언어이다. 그것은 "고원을 넘고 넘고" 넘으면서 종결의 시간을 파괴한다. 시인은 경계를 깨뜨리고 범주를 무너뜨리며 모든 것을 탈영토화하는 욕망의 "드넓은 지도"를 따라간다. 그 지도는 완결을 거부하므로 시인의 발길엔 종착지가 없다. 걸음을 멈추지 않는 자에게 세계는 항상 "새로운 세계"이다.(시집 해설에서 발췌)
오민석 문학평론가
김혜천 시집 《첫 문장을 비문으로 적는다》, 시산맥시혼시인선 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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