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사랑학
불안한 것들이 흔들린다
불온한 것들이 번져 간다
위험한 온도, 위험한 파동, 위험한 무늬, 위험한 피
멈칫거리고 솟아나고 엉긴다
더듬거리고 빨려가고 소용돌이친다
약은 먹지 않고, 사탕은 빨지 않고, 성호는 긋지 않는다
출렁일 때마다 바뀌는 판
미끄러질 때마다 새로 빚어지는 자세
아파도 욱신거리지 않고
외딴 방으로 밀려가도 외롭지 않다
어떤 생이라도 통과해서
다시 태어나야 하지 않겠냐는 듯
꽂힌다, 회오리친다, 푹 빠진다
통증 기계
잠시, 어깨를 돌리는 스트레칭 기계입니다. 무거운 책가
방을 메던 공주 기계거나 내내 당신의 겨드랑이를 파고들던
사랑 기계였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고슴도치의 털처럼 통
각만 서 있는 통증 기계입니다.
명절 증후군에 징징대는 내 어깨를 만져 주던 조카는 '숙
모, 어깨는 소모품이에요' 시크하게 중얼댔지만 여기는 불
량 수치가 너무 높은 라인입니다. 기계의 생각이 깊어지면
주기도문처럼 처방전이 길어지고 심장 박동 수가 빨라집니
다. 서류 기계였던 손가락들과 키스 기계였던 입술이 모래
시계처럼 후루룩 흘러내려 모르는 기계를 완성합니다.
이제 태양의 고도가 높아져도 다른 기계들과 챙챙 부딪
히는 아침 버스는 타지 않습니다. 매일 자라는 이명을 아침
의 세레나데라고 불러 줍니다. 오랜 상처 기계의 허세입니
다. 낯익은 통증을 굴려 낯선 통증을 채우는, 건너편 기계
의 표정을 예약합니다.
안차애 시집 《초록을 엄마라고 부를 때》, 시작시인선 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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