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동
불광동은
새로 산 신발처럼 불편하고
조금씩 헐거워지고
봄에도 눈이 질퍽거렸다
발이 아플 때마다 마음이 아플 때마다 눈이 내렸다
발이 아픈 곳에서 눈이 다시 시작됐다
미끄러지는 발을 자주 씻었다
생각은 밤거리에 있었고
내 발은 눈 속에서 얼었다
불광동에서 나는 사랑 시를 썼다
서쪽을 보다
우리는 동쪽에 있다
남편은 늘 동쪽 벽에 기대어 앉아
서쪽 벽을 보고 있다
액자 속 인물들은 표정을 바꿀 생각이 없다
40년 된 소철은
현관문 열리는 소리에도 놀라지 않는다
반가운 적이 없는 기억들이
꽃 진 화분에서 기어 나와
틈새를 찾아다니며 핀다
르누아르의 여자는 그림 속에서도 르누아르를 사랑한다
꼭 하고 싶은 말은 냉동실에 넣어두고
죽음은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매일
정장 차림으로 날씨를 읽는다
서쪽 벽은 늘 춥고 어둡다
바라보는 중이다
제30회 공초문학상 수상작
최금녀 시집 『기둥들은 모두 새가 되었다』 , 현대시 기획선 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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