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그리고 당신
지하철에선 수많은 더듬이가 나의 감추어진 부분을
탐색한다. 환송이라는 역인지 환상이라는 역인지 알 수
없는 역에서 열차가 멈추고 자동문이 열리면 더듬이 중
하나가 나의 머리 속을 기계적으로 들여다 본다. 머리
속에는 아직 영글지 않은 소금 결정들이 남아 있다, 나
는 지금 당신에게 지배당하고 있다. 지배는 행복이고
행복은 커다란 소금 결정이다. 그러니까 지배와 피지배
는 둘 다 바다에서 왔다고 할 수 있다. 어디에서 내리면
바다에 사는 진짜 소금물을 먹은 참치를 먹을 수 있을
까? 먹다 버린 참치의 아가미가 소리없이 떠돌아다니
는데 나는 아직도 소금을 찾고 있고 지하철 안에는 더
듬이들만 갇혀 있다. 갇혀 있는 더듬이들은 풀려날 기
약이 없고 아무도 눈을 마주치지 않는 지하철 종착역에
떠 있는 나 그리고 당신
한상규 시집 《나와 파르마콘과 생각버스》, 시와세계 시인선 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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