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
햇빛 아래 반짝이는 가시! 황금의 가시는 몽환의 황무지를
수염을 깎지도 않고 몇 년을 걷고 또 걸어야 바위틈에서 잠깐
그림자나마 볼 수 있다. 하지만 황금의 가시는 마른 손가락에
핏방울을 남기고 이내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이 황금가시 나무 이야기의 기원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어
느 노인은 누구도 그 나무를 제대로 손에 쥔 이를 본 적이 없
다고 한다. 물론 그 노인이 황금가시 나무를 꺾었는지 역시 알
려져 있지 않다.
황금의 가시를 잘못 다루거나 맹독을 이겨낼 수행이 없으면
눈을 잃고 광인이 되고 만다. 하지만 황금가시가 눈을 멀게만
하는 것은 아니다. 눈을 멀게 하여 눈을 뜨게 한다. 그리고 모
든 것을 다시 보게 한다.
황금가시 나무의 이야기는 신비주의자의 허황된 전설 같은
것이 아니다. 과학은 황금의 가시가 비춰낸 그림자이다. 소리
와 공기는 움직이는 하나의 사물의 다른 이름이다. 분명, 어딘
가 황금가시 나무가 존재하고 그것은 어둠과 빛을 하나로 보
게 한다.
황금가시에 찔린 자는 누구나 환각에 빠지고 만다. 나무와
바위의 그림자를 구별하지 못하고 새의 날개와 인간의 영혼이
하나가 된다. 그들에게 현실과 꿈의 구별은 무용하다!
제5의 작용
순수만큼 약한 것도 없다. 하지만 순수만큼 강한 것도 없다.
뜨거운 태양의 그늘 아래 잎사귀가 견딜 수 있는 힘은 믿음이
다. 믿음은 순수에 주어지는 선물이다.
믿음엔 곡선의 아름다움이 있다. 믿음은 휘어질 뿐 부러지
지 않는다. 어떤 금속보다도 믿음은 순수하고 단단하다.
믿음은 빛의 움직임을 따른다. 철새들의 비행처럼 믿음은
하늘의 나침반을 움직인다.
믿음이 기적을 일으키는지 모르나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남은
분명하다. 믿음은 물리학이 설명하지 않은 또 다른 힘의 세계
이다.
연어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무사히 산란하고 귀환
함은 운명의 문제일 뿐. 죽은 나무에 물을 주는 건 우리들의
믿음이다.
나는 순수한 영혼의 믿음이 이루어지지 아니한 걸 본 적이
없다. 믿음은 천체를 움직이는 또 다른 힘이다. 그 힘으로 영혼
들은 미지의 목적지에 당도한다.
변의수 시집 《은유의 물리학》, 상징학 연구소 시인선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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