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속의 바다
김은상
나는 누구의 무덤이 되겠습니까.
저녁의 귀밑머리 아래서 파도가 흘러옵니다.
너무나 화창한 밤이어서
죽기 좋은 하이델베르크의 물결입니다.
밤의 눈썹 끝에서 포말로 부서지는
별빛들이 돌의 적막 속에서 출렁입니다.
한 줌의 희망과 한 모금의 기쁨도 없이
마른 생을 살아간다는 건
소리칠 수 없는 비명을 삼키는 일입니다.
날개를 파산한 새들에게 하늘은 관념입니다.
그리하여 나의 연명은 이명입니다.
그리움도 연민도 다 써버린 지 오래인데
비겁하게도 나는 눈사람을 만듭니다.
내 삶의 가장 큰 실패는 시에서 왔지만
시인이 되지 않았더라도
성공적인 인생은 없었을 것입니다.
가여운 하이델베르크의 성벽이
나의 가없는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병든 아버지가 죽고 알게 됐습니다.
내 뜨거웠던 사랑의 원천은 증오였고
생의 절박함은 오해에 자라났습니다.
심해 같은 하이델베르크를 유영합니다.
해녀의 발목을 매만지는 푸른 열과
바다를 음각하는 수평선이 흘러옵니다.
파도의 끝자락에 서 있는 갈매기가
부러진 발톱을 꼼지락거립니다.
추억은 죽음을 향해 놓인 선로입니다.
창공이 돌 속에서 눈동자를 깜박이는
깊은 물결 속에서 주마등을 켭니다.
나는 가로목 한 칸,
그 한 칸들의 우울 속으로 돛단배가 지나갑니다.
부표처럼 한 생을 떠도는
돌 속의 바다,
태어나기 전에 이미 죽은 사람이 있습니다.
김은상
나는 누구의 무덤이 되겠습니까.
저녁의 귀밑머리 아래서 파도가 흘러옵니다.
너무나 화창한 밤이어서
죽기 좋은 하이델베르크의 물결입니다.
밤의 눈썹 끝에서 포말로 부서지는
별빛들이 돌의 적막 속에서 출렁입니다.
한 줌의 희망과 한 모금의 기쁨도 없이
마른 생을 살아간다는 건
소리칠 수 없는 비명을 삼키는 일입니다.
날개를 파산한 새들에게 하늘은 관념입니다.
그리하여 나의 연명은 이명입니다.
그리움도 연민도 다 써버린 지 오래인데
비겁하게도 나는 눈사람을 만듭니다.
내 삶의 가장 큰 실패는 시에서 왔지만
시인이 되지 않았더라도
성공적인 인생은 없었을 것입니다.
가여운 하이델베르크의 성벽이
나의 가없는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병든 아버지가 죽고 알게 됐습니다.
내 뜨거웠던 사랑의 원천은 증오였고
생의 절박함은 오해에 자라났습니다.
심해 같은 하이델베르크를 유영합니다.
해녀의 발목을 매만지는 푸른 열과
바다를 음각하는 수평선이 흘러옵니다.
파도의 끝자락에 서 있는 갈매기가
부러진 발톱을 꼼지락거립니다.
추억은 죽음을 향해 놓인 선로입니다.
창공이 돌 속에서 눈동자를 깜박이는
깊은 물결 속에서 주마등을 켭니다.
나는 가로목 한 칸,
그 한 칸들의 우울 속으로 돛단배가 지나갑니다.
부표처럼 한 생을 떠도는
돌 속의 바다,
태어나기 전에 이미 죽은 사람이 있습니다.
월간 《현대시》 2022년 10월호
김은상 / 1975년 전남 담양 출생. 2009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2013년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시집 『유다복음』. 장편소설 『빨강모자를 쓴 아이들』, 중편 『나의 아름다운 고양이 델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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