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날아가는 검은 우산을 기억해낸다
정지우 어떡해, 죽음 이후는 죽음 이전을 생각하게 하는 걸까? 갑작스러워서 너무 안타까운 부고장 속으로 비가 내린다 머그잔을 만지면 빗물을 떨어뜨리는 너머에 골목이 골목을 돌며 벗어나지 못한다 질문 하나가 수문을 여는 하늘, 검은 이끼처럼 먹구름이 창문을 덮어온다 접힌 형태로 새가 날아간다 한 사람이 남기고 간 둥지와 자녀들 시집 출간에 대해 얘기했지만 테이블과 바닥에 울음이 흘러넘치므로, 우리는 부족해진다 출판을 누구도 서두르지 않는 유고시집 생존하는 시들은 회생할 가능성이 있을까? 이 세 사람은, 세 사람으로는 충분치 않은, 한 사람을 흘려보낸다 수심은 헤아릴 수 없어 쌓이는 물방울 무덤이겠다 시의 영혼에게 육체를 입히는 구름 수의 흠뻑 비를 맞은 시들이 자신을 장사지내고 돌아오는 집, 시집을 묻는다 묻다가 대답이 될 때까지 묻는다 마른 우산은 빗소리를 가두고 점차 퍼져나가는 구절, 밀고 들어오는 문과 열고 나가는 문으로 웅덩이가 생기고 우리는 저 멀리 날아가는 검은 우산을 기억해낸다. 계간 《시사사》 2022년 가을호 ------------------------------------------------------------------------------------------------------ 정지우 / 1970년 전넘 구례 출생. 2013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정원사를 바로 아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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